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충주박물관
- 경주김씨
- 단지주혈
- 부도
- 효자각
- 사인암
- 문경새재
- 화양구곡
- 곡산연씨
- 공산성 선정비
- 화양동 암각자
- 선돌
- 상당산성
- 오블완
- 충북의 문화재
- 청풍문화재단지
- 사과과수원
- 문의문화재단지
- 각연사
- 국립청주박물관
- 밀양박씨
- 티스토리챌린지
- 한독의약박물관
- 보성오씨
- 법주사
- 효자문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공주박물관
- 부여박물관
- 청주박물관
- Today
- Total
목록충북의 문화재 (273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본성리 미륵불 앞에 방치되어 있던 거북좌대에 맹동면 면지발간위원회에서 그동안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거북좌대에 얽힌 이야기를 기술하여 비신을 세워 놓았다. 그 전에는 그냥 풀숲에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본성리 마을자랑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잘 보존되어 있다. 미륵불 앞 통뫼산에 큰 절이 있었는데 한양의 큰 부자가 소유하고 있던 많은 토지를 그 절에 시주하였고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새웠다고 한다. 그 후 부잣집의 집사가 주인이 죽자 자신이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시주하였다는 비신을 뽑아서 하천변에 버렸고 마을 주민이 비신을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하였으며 좌대 석상인 거북 상만 남았다고 전해진다. 비신을 구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지만 구리는 과장된 이야기고 철비가 아니였을까 하는..
조선 왕실은 태(胎)는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명당자리를 고른 후 해당 예법에 따라 정성스럽게 매장했다. 그 시설물이 태실(胎室)이다. 나아가 왕실은 태실의 주위에 금표(禁標)를 세워 채석·벌목·개간·방목 등의 행위를 금지시켰다. 금표를 세우는 범위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어, 왕은 300보(540m), 대군은 200보(360m), 기타 왕자와 공주는 100보(180m)로 정했다. 우리고장에는 진천군 진천읍의 김유신 태실, 충주 엄정면 괴동리의 경종대왕 태실, 청주 낭성면 무성리의 영조대왕 태실, 보은 속리산면 사내리의 순조대왕 태실, 청주 문의면 산덕리 태실 등 5개 태실이 존재한다. 왕명과 인명이 부여된 것에서 보듯 이들 태실은 주인이 모두 확인된다. 이에 비해..
옥산면 덕촌리에 있는 이 열녀각은 1854년(철종 5)에 정검(鄭儉)의 부인 충주 지씨(忠州池氏)의 정렬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열녀각은 1927년에 중수하고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열녀문 편액을 걸었다. 또한 1931년에 후손인 정두현(鄭斗絃)이 짓고 쓴 중수기(重修記)가 걸려 있다.정검의 충신문도 겸하고 있다. 정검(鄭儉)은 하동인으로 임진왜란때 왜군이 청주로 침입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분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왜군의 기세를 꺽지 못하고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였다.또한 정검의 처인 충주지씨는 왜병에게 발각되여 왜병이 충주지씨의 미색에 취해 겁탈하려하자 충주지씨 그왜병..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이다.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一然)에 의하여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던 고려 충렬왕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 1의 신라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 항목에, “계립령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령이다(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원(院)의 경영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출..
원남면 마송리 오미천가에 있는 벅수입니다. 벅수는 마을 입구나 동제구역(洞祭區域)에 세운 마을 벅수과 사찰 입구에 세운 사찰 벅수, 그리고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벅수로 구분할 수 있다. 경계표나 이정표로 삼기 위해 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역질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 수호의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흉액을 밖으로 몰아내기 위하여 동제로서 벅수제를 행하였으며,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비는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렇듯 벅수는 엄연한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신성시하며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 벅수는 원래 음성으로 넘어가는 길목, 곧 마송교 바로 건너쪽 예전의 방앗간 뒤에 있던 것을 현재의 ..
청주시 운동동에 있는 청주한씨역사공원입니다. 운동동에 택지개발등으로 인하여 충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던 청주한씨시조제단비를 이용하여 역사체험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낮게 막돌로 토담도 둘렀고 조경등도 잘 갖추어 놓았습니다, 주위의 많은 주민들에게 청주한씨시조제단비를 알리며 문화유적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하는 좋은 공원입니다. 주위에 있는 양수척효자비와 운곡서원그리고 정려문등을 이용하여 연계하면 아이들이나 주민들에게 좋은 교육의 장소가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