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부여박물관
- 각연사
- 부도
- 화양동 암각자
- 청풍문화재단지
- 청주박물관
- 효자문
- 공주박물관
- 법주사
- 문의문화재단지
- 티스토리챌린지
- 문경새재
- 보성오씨
- 선돌
- 국립청주박물관
- 화양구곡
- 효자각
- 경주김씨
- 오블완
- 한독의약박물관
- 곡산연씨
- 상당산성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공산성 선정비
- 밀양박씨
- 사인암
- 충북의 문화재
- 충주박물관
- 사과과수원
- 단지주혈
- Today
- Total
목록2021/03/27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 있었던 고려 후기의 미륵 석불. 유촌리 미륵불은 대석 없이 하단부가 지하에 묻혀 있으며, 머리 위에는 보관을 쓰고 있다. 두정에는 나발을 표현하였으나 매우 작게 돋을새김을 하여 소발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분을 길고 뾰족하게 만들어 보관의 아랫면 홈에 맞닿아 있다. 상호는 길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이마의 윗부분이 상당히 커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호는 살이 많이 찐 편이며 양 볼과 턱이 두툼하다. 턱은 둥글게 표현하여 마치 조선시대 문인석이나 장승을 보는 듯하며, 전체적인 인상의 표현이 문관석을 닮았다. 눈과 코가 손상을 입어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목은 매우 짧아 거의 없는 편이며 어깨는 머리 부분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하얀 목련이 한창입니다. 개나리도 앞다투어 노오란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구요. 주위로는 아침 저녁으로 날씨의 변화가 심하긴 해도 계절의 변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 그치면 연초록의 나뭇잎들은 그 성숙도의 채색을 더 짙게 가져갈것이고 한뼘이고 더 큰 봄들의 기지개가 여기저기서 들릴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도 보면서도 마음속은 항상 제자리이기를 갈망하는 마음은 아직도 조금은 치기어린 감정이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앞다투어 알려주는 봄의 소식을 나도 마음속으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어린시절의 그리움 아쉬움의 꽃들도 피워 올리고 싶습니다. 봄비 내리는 오후 문득 마음속의 추억을 꺼내 봄도 나름의 호사가 아닐까요? 봄비 내리..

김영익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148번지에서 김수홍(金壽洪)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충청북도 음성읍 초천리에 있는 백양서당(栢陽書堂)에 다니던 정문영, 정대영, 최만득 등과 음성 장날에 맞춰 시위를 벌였고, 3월 28일에도 음성시장에서 시위를 하였다. 4월 6일 밤 산 위에서 약 5백여 명의 군중과 횃불을 들고 시위하다가 4명 모두 붙잡혔다. 이후 구속되어 징역 4개월 형을 받았다. 김영익은 서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내려왔으며, 60세에 사망하였다. 마을회관옆에 김영익추모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김영익선생의열추모비(愛國志士金榮翼先生義烈追慕碑)라고 적혀있습니다.추모비 옆에는 마을유래비도 어깨를 나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