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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6/09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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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리는 회인이나 대전을 거쳐 오는 길도 있지만, 청주에서는 문의~남대문을 잇는 509번 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북으로 문의면 묘암리, 동으로 거교리, 남으로 수몰 되어 사라진 어성리, 서로 샘봉산 너머 청주시 문의면 염티·소전리와 접해 있다. 본래 회인군 서면 지역으로 호점산성의 남문 밖이 되므로 남대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지동, 거구리와 후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대문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거쿠리, 남대문, 만마루가 있으며, 지명으로 가마골, 가마성, 남문, 논골, 느저목골, 돼지골, 뒤견봉, 말바탕, 먹뱅이, 멀티고개, 모악골, 바사리고개, 배나무골, 불무골, 사지뱅이골, 상수리, 성지골, 쇠목골, 안터, 안어성골, 염티골, 용 굴, 우래실, 은정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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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묘서리 묘서경로당을 지을 때 마을을 위하여 자신의 토지를 희사한 안재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주민일동의 이름으로 2000년 10월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한글로 순흥안공재동공적비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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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하장리에 위치하고 있는 경주이씨 문간공을 모시는 재실입니다. 근간에 신축하였습니다. 장산재 앞에는 근간에 후손들에 의하여 건립된 이제현과 이사균의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장사재 옆으로는 이제현의 초상화가 있는 영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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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리는 본래 보은군(報恩郡) 탄부면(炭釜面)의 지역으로서 언덕에 자리잡아 덕골 또는 덕동(德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화리(石花里)를 병합하여 덕동리(德洞里)라 하였다. 남원인 양형기(梁亨基)는 탄부국민학교에 임명된 후 12년간 봉직하면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화목하고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며 열심으로 봉직하였다. 1965년 5월 작은 비석을 세워 양형기님의 학교사랑을 기리고저 한다. 탄부초등학교 정문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관리상태는 양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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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면 갈목리 마을회관에 있는 공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박원만공배능성구씨공덕비(朴元萬公配陵城具氏功德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갈목리 마을회관을 지을 때 토지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을회관을 지을 수 있는 토지를 희사한 박원만 부부의 공을 잊지 않기 위하여 동네주민들의 아름으로 2020년에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속리산면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갈목리는 동쪽으로 삼가리, 서남쪽으로 장안 면, 북쪽으로 중판・상판리와 인접하고 있다. 법주사와 속리산 쪽으로 향하는 길과 삼가저수지 쪽 길, 말티재로 향하는 삼거리 중심에 있는 갈목리는 산세가 부드럽고 인심 또한 후덕하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갈목과 하갈목을 병합하여 갈목리가 되었고 1947년 속리면이 분할됨에 따라 속리산면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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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처흠은 아버지가 눈병이 있어 약을 써도 오랫동안 효험이 없었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흰 매의 눈알을 구해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선처흠이 산에 올라 치성으로 기도하자 한 쌍의 흰 매가 날아와서 잡아 약으로 썼더니 아버지의 병환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선처흠의 처 영인 경주김씨의 효열문으로 남편이 고질병으로 고생하자 넓적다리 살을 잘라 먹여 낫게 하였다. 선처흠의 임종 시에는 단지주혈로 손가락을 베어서 나온 피를 먹여 며칠을 더 연명케 하였다고 한다. 효자증조산대부동몽교관보성선처흠지문(孝子贈朝散大夫童蒙敎官寶城宣處欽之門) 열녀선처흠처영인경주김씨지문(烈女宣處欽妻令人慶州金氏之門)이란 쓴 정려문과 정려비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