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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6/06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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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산척리 반목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앞면에 ‘가평이공기정송덕비(加平李公 基正頌德碑)’라 하였고, 뒷면에 건립 연대를 밝히고 있다.건립시기는 1959년 입니다. 앞면 좌우에는 ‘효급종족 제달향당 유구개송 무물불향 중부지화 박시지량 흘차덕혜 지피궁양 산척리일동(孝及宗族 悌達鄕黨 有口皆頌 無物不嚮 中孚之化 博施之量 屹此德惠 指彼穹壤 山尺 里一同)’이라 하였다.
면민들의 세금을 대납한 공적으 로 1927년 보은군수가 건립한 것이다. 앞면에 ‘전위원최공원근시혜기념비(前委員崔公元根施惠記念碑)’라 하고 덕행을 4행시로 옮겼으며, 뒷면에 ‘소화 삼년무진삼월일(昭和三年戊辰 三月日)’이라 하여 건립 연대를 기록하였다. 전체 높이 180cm, 비면 52×139×29cm의 크기이다. 거현 1 2구, 묘서 2구 입구 도 로 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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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굴리는 보은읍의 남쪽에 위치하여 동쪽은 월송리,서쪽은 지산리,남쪽은 삼승면,북쪽은 수정・월송리에 접하고 있다. 본래 보은군 서니면지역으로 고려시대에 금을 많이캤다 하여 쇠푸니,또는 금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따라 은사리와 구량리를 병합하여 금굴리라 하고 보은읍에 편입되었다. 금굴리는 은사뜰, 쇠푸니, 새터, 구랭이등 자연마을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있다. 1960년 은사뜰과 쇠푸니를 금굴1리로,구랭이와 새터를 금굴2리로 분구하였다 구랭이는 원래 아홉성씨를 가진 사람들이다 투기하지 않고 선량하게 살아간다는 뜻의 구량리(九良里)가 변한 지명이다. 지금은 청주~상주간고속도로의 보은인터체인지와 확장된 19번국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몇 년전만 해도구랭이는 보청천을 사이에 두고 삼승면 둔덕리부터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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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리는 마을뒤로 잣미산(함림산)이우뚝하고 마을앞으로 보청천 상류가 흐른다. 동쪽은 학림리, 서쪽은 장속리, 남쪽은강산리와 교사리,북쪽은 내북면 서지리에 접하고있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구이목리와 송정리를 병합하여 내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87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산성1리(구이목,송정)와 산성2리(잣미)로 나뉘어 보은읍에 편입되었다.자연마을로는 송정과 구이목, 잣미가 있다 산성리 잣미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용기선생의 의열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의사이공용기선생의열비(義士李公龍基先生義烈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단기4320년(서기 1987년)에 내북애향동지회에서 건립하였습니다. 이용기(1880. 7. 22.~1942. 2. 7.)는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로 내북면(內北面) 산성리(山城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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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 선생은 1882년(조선 고종 19년)에 주상(周尙)의 아들로 종곡에서 태어나 큰 아버지 주은에게 입양하여 자랐다. 학산 선생은 학문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의약에도 관심이 커 속리산 일대의 약초를 연구하기도 하였으며 42세 때에 탄부 매화리로 와 한약방을 개설하여 가난한 이웃을 구하는 한편, 배우고자 하나 배울 수 없는 가난한 이웃의 어린이를 모아 가르치는 것을 낙으로 삼아 많은 문하생을 길러냈고, 1959년 “나라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의 3위1체를 잊지 말라는 평소의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1972년 1백40명의 문하생은 학산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선생이 거처하던 마을앞에 추념비를 건립하고 학산성생의 생일을 기해 추모행사를 올리고 있다.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