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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6/14 (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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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곡3리 우레실 마을은 예전에 마을 뒷산에 두견새가 울었다고 하는데서 빌려온 이름이다.. ‘우뢰실’이 변하여 ‘우레실’이 된 것이다. 용곡3리 우레실은 용머리에서 호점산성 방향으로 올라야 볼 수 있다. 쇠푼이 만큼 골이 깊다. 산 밑에 올망졸망 자리 잡은 마을 앞에 다랑이 논이 있어 쇠푼이 보다는 조금은 넓어 보였다. 전형적인 산촌마을 풍경이었다. 마을 입구 길옆 돌탑에서는 정월 11일부터 5일간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마침 정월대보름이 코앞이라 제사 준비를 위해 우레실 터줏대감인 어르신이 청소에 열중 하고 계셨다. 요즘에는 5일간 기도는 올리지 못하고, 정월 14일 아침 마을 샘을 퍼내고 저녁에는 탑재를 지내며 저녁에는 마을 뒷산에 올라 산재를 지낸다고 한다 [보은군지] 마을 앞산에는 호점산성이 자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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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곡1리 용머리는 회인천을 지나 만나는 첫 마을이다. 현재 12집이 살아 가고 있는데, 예전에는 큰 마을이었다. 북쪽으로 성거리마을, 동쪽으로는 양짓말이 있고, 남쪽에는 주막거리마을이 있었는데 대청댐 담수로 사라져 버렸다. 서쪽으로 샘골마을과 중뜸마을이 형성되어 지금의 용머리 마을이 되었다. 1980년대에 대청댐이 건설되어 새들이라는 좋은 농토가 전부 수몰되었다. 한때 는 40여 호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이었는데 정겹게 살던 주민들이 하나둘 고향 을 떠나 조금은 쓸쓸한 마을이 되었다. 마을 중앙에는 회인서당이 있는데, 예전 회룡초교를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다. 회룡초등학교는 1963년 회인국민학교 용곡분교장 인가, 1967년 회룡국민학교 인가를 시작으로 1982년 회인국민학교로 통합하기까지 인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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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장리(板藏里)는 본래 회인군(懷仁郡) 남면(南面)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널처럼 되었으므로 늘개미, 광포(廣浦) 또는 판장(板藏)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담리(沙潭里) 일부를 병합하여 판장리라 하고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일부 수몰되었다.광포1구는 판장1리에 속한다. 조곡리 사실마을을 지나 한 구비 돌면 판장리다. 북으로 조곡리, 동으로 회인천 건너 신곡리, 남으로 분저·은운리, 서로 옥천군 안내면 노성리와 접해 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으로 지형이 널처럼 되었다 하여 늘개미, 광포 또는 판장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담리 일부를 병합하여 판장리라 하고 보은군 회남면에 편입되었다. 대청댐 담수로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늘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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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장승의 모습은 툭 불거진 눈과 주먹만한 코가 조금은 해학적이다. 마을입구에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개념의 선돌이 있었으나 도로 확포장공사로 인하여 현재는 사라진 상태이다. 선돌이 있던 자리에 문인석 2기를 한짝으로 세워져 있었으나 도난당하고 현재의 문인석을 다시 세워 이를 위하고 있다. 아곡(아치실)마을의 지명유래 또한 독특하다. 소룡골 안쪽에 마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모든 마을을 습격하였는데 마을 앞에 숲이 울창하여 잘 보이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간 후 뒤늦게 지나친 것을 알고 아차 빠뜨렸다고 후회한 뒤부터 조상들이 ‘아차실’이라 부르게 된 것이 변하여 ‘아치실’이라 부른다고 한다. 진실이야 가릴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어찌보면 역사의 아픔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을의 동제로는 산신제를 지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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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보은동헌 보호수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선정비입니다. 주위 환경이 많이 열악합니다. 보존상태 또한 상당히 열악합니다. 파손된 선정비가 그냥 바닥에 뒹굴고 있습니다.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모습입니다. 선정비로는 윤경용의 선정비 3기와 땅바닥에 있는 선정비 포함 성덕형의 선정비 2점 그리고 김기윤의 선정비 1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에서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주위 환경을 정비한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현감윤후경룡청덕선정비(縣監尹侯敬龍淸德善政碑) (전체높이170cm,비 면45×102×20cm).이밖에 왼쪽에도 훼손된 선정비가 여러개 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윤경룡은 영조9년(1733년)보은현감에 제수가 됩니다. 현감윤후경룡영세불망비(縣監尹侯敬龍永世不忘碑)(1735,영조11)(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