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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6/04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90호인 보은경주이씨 효열각은 다섯 분의 경주 이씨 효열정문을 한 각 안에 칸을 나누어 함께 모셔 놓았다. 효자 세 분과 열녀 두 분의 정문이다. 정면 6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창경, 원경, 명경 삼형제는 1666년(현종 7)에, 연안 김씨는 1747년(영조 23), 창녕 성씨는 1794(정조 18)에 명정되어 현판하였다. 한 가문에서 삼형제가 모두 효자로 명정되는 것은 매우 드물고 영광스런 일이 다. 또한 연이어 열부로 명정된 것은 이 집안의 높은 가풍과 덕성을 나라에서 인정 한 자랑스러운 일이다. 현재는 관리 상태가 단청등을 새로 하고 주위정리도 하여 양호합니다. 孝子贈承訓郞戶曹佐郞李昌慶之門-효자 이창경 정문 孝子中直大夫行玉果縣監南原管兵馬節制都尉李元慶之門-효자 이..
숲을 이루는 수령 200~300년 소나무 87그루와 버드나무 5그루가 2009년 8월 13 일 보호림으로 지정되어 군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키가 큰 버드나 무는 높이가 13~17m, 흉고둘레가 7~12m에 달한다. 그간 사유지에 속해 있어 일부 나무들은 밑둥이 잘려나가는 등, 원형 보전에 어 려움을 겪었다. 보은군은 숲의 훼손을 막고자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나무 주변 사유지를 매입하여 200m 데크로드를 설치하였다. 데크로드는 사람과 나무사이의 거리를 좁혀주어 가까이에서 나무를 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동시에 나무뿌리와 농경지를 보호하기도 한다. 마을 앞쪽으로 길게 선을 이루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어 마을의 병풍림이 되어 주기도 하고, 수로의 둑을 막아주기도 한다. 마을 주택의 마당..
물안이마을은 1960년대에는 묘골, 주막거리, 안말 등 4개 자연부락에 100호가 살던, 관내에서 제일 큰 마을이었다. 마을에 위치한 수한 치한센터는 1914년 일제강점기에 보은경찰서 수한 주재소로 설치, 운영되어 오다가 1945년 해방 후 수한지소로 개칭되었고, 1996년 수한파출소로 개명되었다가 현재는 수한치안센터로 불린다. 1914년 묘서리에는 양조장, 약방, 정미소, 이발소 등이 있어 수한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묘서교 옆에 묘서보건진료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서교 앞에는 마을자랑비와 지름 10cm 정도의 작은 구멍이 뚫린 커다란 돌과 판석이 나란히 놓여 있다. 마을 주민의 얘기에 따르면 소가 끌던 연자방아라고 하는데, 모양을 보아서는 다른 듯하다. 마을 뒤에 자리한 관월암에서 내려다보면 ..
수한면 묘서리는 북으로 소계리, 동으로 삼승면 둔덕리, 남으로 거현리, 서로 광촌리와 접해 있다. 본래 보은군 수한면의 지역으로 못골 서쪽이 되므로 모섯골 또는 묘서동 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묘동리와 중리를 병합하여 묘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묘골, 물안이(호송골), 버징이(버드쟁이), 주막거리, 증개월(증개 울)이 있고, 없어진 마을로 모종(모정, 중리)이 있다. 지명으로는 개토시, 군수바우, 날근터, 늪능개들, 비룡성이, 상나무배기, 수케토시골, 어루수티, 질장대, 한섬지기 들 등이 있다 면민들의 세금을 대납한 공적으로 1927년 보은군수가 건립한 것이다. 앞면에 ‘전위원최공원근시혜기념비(前委員崔公元根施惠記念碑)’라 하고 덕행을 4행시로 옮겼으며, 뒷면에 ‘소화삼년무진삼월..
익재영당(益齋影堂)은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영정을 모신 사우다. 고려 말의 명신으로 원나라 연경(燕京)에 가서 만권당(万卷堂)이란 서재를 세우고 당시 원나라의 석학 문인들과 어깨를 겨루며 학문과 문학을 교류한 당대 최고의 문인이자 학자 이다. 1504년(연산군 10) 후손인 이사균(李思鈞)이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 유배되어 이곳에 부처(付處)되었을 때 창건하였다. 건물 구성을 보면 전면에 염수재 (念修齋)라고 쓴 현판이 걸린 재사가 있고, 후면에 익재영당이 자리한다. 그 사이에 중문이 있고 담장이 둘러있다. 영정은 1980년 11월 13일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이것 은 정본을 모사한 모사본이다. 가로 96cm, 세로 165cm의 호상에 좌측으로 앉은 모습이다. 정본은 익재..
산외면 이식2리에 있는 국회의원 육인수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국회의원육인수송덕비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습니다. 육인수(1919년12월 3일 - 2001년6월 25일)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육영수와 육예수의 친오빠, 육인순의 남동생, 박정희의 손위처남이며,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홍세표, 홍소자의 외삼촌이다. 종교는 원래는 불교였으나, 언젠가부터 개신교(장로회)로 개종하였다. 191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現 청주고등학교), 일본 도쿄 무사시노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교사로 근무하였다. 1963년 매제 박정희가 집권한 직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옥천군-보은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