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오블완
- 효자각
- 화양동 암각자
- 효자문
- 법주사
- 단지주혈
- 공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각연사
- 화양구곡
- 상당산성
- 부여박물관
- 사과과수원
- 충북의 문화재
- 청주박물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한독의약박물관
- 티스토리챌린지
- 국립청주박물관
- 선돌
- 보성오씨
- 공산성 선정비
- 부도
- 문의문화재단지
- 밀양박씨
- 경주김씨
- 곡산연씨
- 사인암
- 충주박물관
- 문경새재
- Today
- Total
목록2021/08 (5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6K9k6/btrbwhDqqGs/BmA5qDHhBEoR8wv5sYMkE1/img.jpg)
단재 신채호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은 원래 고령신씨들의 집성촌인 낭성면 관정리에 있었으나 후손들에 의하여 신채호선생의 생가가 있던 이곳 귀래리로 옮겨 다시 건립하였습니다. 낭성면은 고령신씨들이 대성인 고령신씨들의 집성촌입니다. 관정리쪽으로는 묵정영당과 사당 그리고 문중의 하나인 신중엄의 신도비와 감천가에 자리한 백석정등 고령신씨 가문과 연관된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덕면 청용리에는 고천군의 사당과 함께 현재 재실로 사용되는 곳은 단재 신채호선생이 청소년기 시절 수학한 장소라고 합니다.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묵정영당과 사당 그리고 감천가의 백석정 가덕면 청용리에 고천군 사당과 함께 귀래리의 선생의 영당과 무덤을 잇는 이야기가 있는 거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HSxx3/btrbosNrLZV/LcRfszAQTG21BkEWpyhFk0/img.jpg)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신채호 선생의 묘역입니다. 묘역에는 근간에 세운 석물인 장명등과 망주석 그리고 문인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재신채호선생의 사적비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명등은 비단 분묘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관가 등의 공공 건축물의 처마 끝에 달거나 마당에 기둥을 세워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장치한 등도 장명등이라고 한다. 분묘 앞의 장명등을 일명 석등룡(石燈龍) 혹은 석등(石燈)이라고도 한다. 분묘 앞에 장명등을 세우게 된 시원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분묘제도에 의하면, 분묘 앞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나 문무신상(文武神像) 등의 석조물을 세우는 데는 피장자의 신분 혹은 품계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제한하였고, 장명등의 경우는 일품재상(一品宰相)에 한하여 세..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DHi6U/btrbquDYRMN/A4QrU6W4g4JHGGbhuPydpK/img.jpg)
이 충신각은 조선 고종 2년(1865)에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백면선생으로 의병을 일으켜 반란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된 충신 경주인(慶州人) 낙당(樂堂) 김한정(金漢廷, 1688∼1728)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충신각은 196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이밖에 고종 24년(1887)에 김영목(金永穆)이 지은 "충각서(忠閣序)"와 고종 25년(1888)에 송근수(宋近洙)가 지은 "충려기(忠閭記)" 등의 기문판이 걸려 있다. 청원군 북이면 석성리 길가에 위치하고있다. 석성리는 본래 청안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성리, 신하리와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BKTfd/btrbyHIBsNf/41u1bucXjWtJEZppflWOrk/img.jpg)
낭성면 귀래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채호선생의 동상입니다. 귀래리에는 신채호선생과 관련된 유물관과 함께 동상 그리고 영당과 선생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찾은날은 코로나로 인하여 유물관은 입장할수가 없었으며 동상과 함께 영당 그리고 무덤만 둘러 볼수 있었습니다. 신채호는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이다.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산내면(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 검심(劍心), 적심(赤心), 연시몽인(燕市夢人) 등이다. 조선시대 신숙주(申淑舟)의 18대 손이 된다. 고령신씨(高靈申氏)의 일부는 연산군 무렵에 낭성과 가덕 지방에 낙향하..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kWgh9/btraqS6vKr7/QAkYT32hyCxiHKsgcXnBZ0/img.jpg)
1층 기단(基壇) 위에 1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특이한 형태로, 전탑(塼塔:흙벽돌로 쌓아만든 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2기, 그리고 그 사이에 3기 등 5기씩의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20여 단의 일정치 않은 돌을 포개어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전탑에서와 같이 아래·윗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단을 쌓아 점차 줄어들게 하였다. 지붕돌 한가운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을 다시 쌓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비교적 탑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