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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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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 있는 불상으로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어진 상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은 펑퍼짐하게 표현하였다. 볼에 살이 올라 풍만한 얼굴은 길게 늘어진 두 귀와 함께 양감을 느끼게 한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 입고 있는데 앞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모양이다. 각 부분의 모습에서 양감을 느낄 수 있으며 형식으로 보아 9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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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니면 원평리 미륵불 앞에 있는 석등대석입니다. 석재의 조합으로 보아 하나의 석물이 아닌 여러 석물이 조합되어 있는 느낌입니다.기단부와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석물에는 앙련과 복련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제단(祭壇)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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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로 향하는 석교는 1963년 8월에 만들었다고 표식이 되어 있습니다. 문화재 보호차원에서인지 석굴의 석불은 가까이에서 볼수가 없습니다. 군위 석굴을 찾는 것도 초행이고 또한 석굴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없으니 조금은 난감했습니다.작은 이정표라도 만들어 세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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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부소산 북쪽기슭의 백마강 좌안(左岸)에 자리한 고란사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법당과 요사(窯舍)의 건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사찰이다. 이 사찰은 불적(佛跡)보다는 고란초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법당 뒤편에서 나오는 약수와 함께 이 사찰의 명물을 이루고 있다. 고란사는 백제멸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저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는데 현 사찰건물(寺刹建物)은 은산(恩山) 승각사(乘角寺)를 이건(移建)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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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사는 조선 말기에 성종대왕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책록되고 고천군(高川君)에 봉해진 이조판서(吏曹判書) 신정(申瀞, 1442∼1482)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고령신씨(高靈申氏)의 사당으로 일명 "청룡사(靑龍祠)"라 하였다. 후에 화재를 당하여 폐사되었다가 1959년에 다시 세우고 매년 3월 10일에 향사하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59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3간, 측면 1간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분합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고 유리창 미닫이를 달았으며 "고천군사당(高川君祠堂)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으로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현재 고령 신씨(高靈申氏)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천군 신정(申瀞)은 조선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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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리(말미)는 본래 남일상면의 지역으로서 말처럼 생긴 산이 있으므로 말미 또는 두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함에 따라 신대리와 회인군 북면의 지경리와 문의군 동면의 인차리 일부를 병합하여 두산리라하여 남일면에 편입되었다. 두산리 동네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우물입니다. 지금은 우물의 기능을 상실하고 방치되어 있지만 아직도 물은 계속 나오는 듯 합니다. 상수도 시설의 완비로 인하여 이제 우리들의 주위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풍경중에 하나입니다. 동네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스테인레스 뚜껑을 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