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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3 (3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보성인 오경의로 묘지로 경의는 참봉을 지냈습니다. 후대에 후손들에 의하여 석물이 후보되었습니다.
현신교위수적양만호보성오공휘옥순지묘배영인밀양박씨부좌(顯信校尉守赤梁萬戶寶城吳公諱玉筍之墓配令人密陽朴氏袝左)라고 적혀 있습니다. 옥순은 자는 청반이며 현신교위적양만호로 묘는 부친인 인후공과 같이 현도면 구곡골짜기에 있으며 공은 지선정 정자를 짓고 북창 정렴과 사귀면서 시와 노래를 주고 받았다.
보성인 오정기는 통덕랑 조봉대부와 동몽교관을 지냈습니다. 이곳 양촌 구곡에 구곡을 설정하며 후학에 힘썼습니다. 이름난 효자로 삼효정이라 하여 지금의 현도초등학교내에 효자각이 있습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유명조선국증조봉대부동몽교관오공정기지묘배영인청주한씨부좌(有明朝鮮國贈朝奉大夫童蒙敎官吳公鼎基之墓配令人淸州韓氏祔左)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정기는 조선 후기의 효자입니다.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효자로 칭송되었던 오진택(吳振澤)의 아들이고, 역시 효자로 이름 높던 오상건(吳尙健)의 손자이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으로 이름 높던 청원군의 보성오씨(寶城吳氏)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효행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나라..
보성인 인후는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과가 되었다. 부친은 이곳 현도면에 입향조인 진의부위 숙동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장자 옥순은 첨사이고 2남은 부사과 옥린이며 삼남은 옥서이다. 81세로 졸하여 묘는 상삼리 양촌 구곡골짜기에 있다.
높이 5.9m. 석탑은 ‘말미장터’라고 불리는 마을의 남쪽에 있는 언덕의 밭에 있는데, 상태로 보아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상륜부(相輪部)는 남아 있지 않고, 받침돌의 덮개돌 일부와 2층 지붕돌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을 뿐 각 부분이 대체로 완전한 상태이다. 단면이 네모난 석탑은 단층 받침돌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석탑으로,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받침돌의 아랫부분은 10여 장의 길고 큰 돌을 놓아 바닥을 마련하고, 그 위에 높직한 7장의 굄돌을 올린 모습이다. 옆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윗면에는 둥글고 높직한 굄과 함께 약간 낮은 각진 굄이 있다.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널돌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을 서로 엇갈리게 세웠기에, 각각의 면을 보면 마..
이원면 용방리 구룡마을입구에 있는 입석입니다. 구룡리는 우암 송시열의 탄생지로 용방리 동쪽에 위치한다. 동에서 북쪽으로 금강이 휘 돌아 가고 마을 뒤편에 9개의 봉우리가 있다. 마을 앞으로 멀리 명산 월이산이 보이는 명터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동쪽은 금강으로 지탄리, 남쪽은 구릉지로 원동1리, 서쪽은 칠방리와 낮은 산지, 북쪽 은 금강 건너편 철봉산과 경계를 이루며 접한다. 후대로 오면서 단결이나 백전백승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1960대 이후 새마을운동바람과 함께 새겨진 듯 합니다. 비석은 마을 동구나무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