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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3 (3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제용 ·처용(處容)이라고도 한다.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신라의 구역신(驅疫神)인 처용일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예로부터 매년 집안 식구 가운데 성명설(星命說)에서 나이가 액년[厄年:나후직성(羅睺直星)의 운에 해당하는 나이]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제웅직성이라 하여 제웅으로써 그를 위한 특별한 액막이 방법을 쓰는 풍습이 있었다. 즉 음력 정월 14일 밤에 제웅을 만들어 액년을 당하는 사람의 옷을 입히고 성명 또는 출생한 해의 간지(干支)를 적어서 길바닥이나 다리 밑에 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그 액이 다른 곳으로 전가된다고 한다. 액운을 맡아가는 이를 대접한다는 뜻으로 제웅의 머리 ·가슴 ·팔다리에 동전을 넣어서 버린다. 이 때가 되면 동전을 얻기 위해 미리 여러 아이들이 문 밖으로 몰려..
낭성'은 청주의 옛 이름이다. 지금은 미원면이 된 성대리의 뒷산에 있는 고성인 낭성(낭비성)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신라시대에 상당산성을 포함해 청주 동부에 줄줄이 이어져 분포한 여러 고대 산성들이 통합 발전하며 낭성으로 통틀어 불렸으므로, 청주의 기원이 된 그 성들을 끼고 있어 낭성이라는 이름까지 붙게 된 낭성면은 매우 유서 깊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낭성면 유래비는 낭성주민센터 정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남면 고량포리에 위치한 경순왕릉은 사적 제244호. 지정면적 11,777㎡. 무덤봉분의 지름은 7m, 높이는 약 3m이다. 경순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부(傅)이다.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6대손이며,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이다. 927년에 왕이 되어 935년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물려줄 때까지 9년간 재위하였으며 978년(경종 3)에 죽었다. 능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 조선시대에 찾게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릉이다. 무덤의 외형은 둥근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밑둘레에는 판석(板石)을 이용하여 무덤보호를 위해 병풍처럼 돌렸고 능 주위로는 곡장(曲墻)이 돌려져 있다.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고 ‘新羅敬順王之陵(신라경순왕지릉)’이라고 새긴..
연천군 백학면에 처가집을 찾았다가 주위에 있는 경순왕릉을 다시 찾았습니다. 몇번이고 방문한 곳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이 번에는 찾으니 능 으로의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는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능에 계신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순왕릉 앞에 서있는 장명등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사면에 문양도 잘 살펴보았습니다. 장남면 고량포리에 위치한 경순왕릉은 사적 제244호. 지정면적 11,777㎡. 무덤봉분의 지름은 7m, 높이는 약 3m이다. 경순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부(傅)이다.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6대손이며,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이다. 927년에 왕이 되어 935년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물려줄 때까지 9년간 재위하였으며 978년(경종 3)에 죽었다. 능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 조선시..
청주시 동쪽 삽십리 쯤에 샘물은 맑고 토지는 비옥하며 풍속은 아름다운 마을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아주신씨가 10여세 동안 효도와 화목으로 세세의 모범으로 삼고 시와 예로 가문의 업을 삼으면서 모여서 살아온 이목동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송암 신공의 휘는 인경이요 자는 열경이며 송암은 호니 기신 못지않은 외외한 충성이 있었던 장절공 휘 숭겸의 후예로 아주의 신 휘 익휴는 관향을 연 조상이고 당개에 비견할만한 청명과 직절이 있었던 정숙공 휘 윤유와 피눈물이 떨어진 곳에 갑자기 쌍죽이 솟은 효행과 정혁을 만나 신복을 잊은 절의가 있었던 퇴재 휘 우는 모두 중세의 현조이니 아주신씨야 말로 절로 잠영한 가문이다. 참봉 휘 백과 단인 안동김씨의 차남으로 임술년 11월 20일에 고향집에서 태어나니 준결한 용모와 온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