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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3 (3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종암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적리, 화암리, 농곡리와 손목포리(孫木浦里), 성화리(盛化里), 분치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종암리라 해서 미원면에 편입됨. 자연부락으로 관사터, 무주리, 벌말, 소란, 용소골, 주막거리가 있으며 현재는 종암1,2리로 분리되어 있음.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주리(舞笑里, 盛化) : 삼거리에서 증평으로 가는 군도 우측 도로변 언덕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뒷 산형이 선인이 춤을 추는 형상이라 한다. 벌말(下赤) : 내수로 넘어가는 지방도 우측에 접한 마을. 삼거리(주막거리) : 증평, 내수, 미원으로 가는 세갈래 길이 있는 곳에 위치하여 내수나 증평장을 보러 가는 행인들이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쉬어갔다고 한다. 소란(花岩)..
낭성면 갈산리에 있는 추봉영당입니다. 추봉영당에는 오저(吳著)공을 모시고 있습니다. 오저공은 금암 오숙선생의 증손이며 조부는 증 호조참판 필창(必昌) 부친은 증 호조판서 도명(道明)이다. 공은 어려서 일찍 모친을 여의웠으나 부친이 키웠다. 어려서 부터 중년에 이르기 까지 학문에 뜻을 두고 글읽기에 전념하여 사서삼경을 익히고 생활이 쪼들려도 학문에 전념하여 44세 되던 해인 1756년(영조 32년)병자년 식년시에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 후 숭문원정자 예조좌랑 경상도사 사헌부 지평 정언 장령 군자감정등을 거치며 공직에 있으면서 본가 왕래시에도 봉록이외에는 국고금을 쓰지 않았으며 청렴하고 주변을 깨끗히 하는 등의 모범을 보였으며 얼마 후 고향 갈산으로 낙향하여 추봉이라 호를 지어 후학에 힘쓰시다 계미년에 사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2리 용소골에 있는 연자방아입니다.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마을이 정갈하고 주민들에 의하여 잘 꾸며져 있습니다. 연자방아에 대한 설명판도 서있습니다. 연자방아는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한 가지이다. 연자매라고도 한다. 발동기가 없던 옛날에 말이나 소의 힘을 이용하여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사용하였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서,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서 돌리도록 되어 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연자방아를 갖추어 놓고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종암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적리, 화암리, 농곡리와 손목포리(孫木浦里), 성화리(盛化里), 분치..
낭성면 현암리 광주안씨의 재실인 안현각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세거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광주안씨현암세거비(廣州安氏玄岩世居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광주안씨세거사(廣州安氏世居史)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2006년 음력6월에 건립하였습니다. 광주 안씨(廣州 安氏) 시조(始祖) 안방걸(安邦傑)은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광주군(廣州君)에 봉(封)해졌다고 한다.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三國)을 통일하는 시기에 광주지방(廣州地方)의 향리(鄕吏)로 광주의 안정(安定)에 공적(功績)이 있어 대장군(大將軍)의 군직(軍職)을 가지고, 토성분정(土姓分定)에 의한 성씨(姓氏)를 안씨(安氏)로 스스로 가지고 광주(廣州)를 생활 근거로 거주하였으므로 후..
봄이다. 차창을 열고 달려도 추운 기운을 느낄수가 없다. 되려 창문을 닫으니 더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낭성면 쪽에서 증평으로 너머가는 고갯길에서 바라다 본 삼기저수지의 풍경속에도 봄이 담겨져 있는것 같다. 언제나 시간되면 찾을수 있는 곳이다. 삼기저수지 주위로는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전원주택단지도 보이고 많은 변화가 있다. 저수지에 만들어 놓은 둘레길을 걷는 시민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저수지를 주변으로 하여 만들어 놓은 목책길이 참 보기에 좋다. 이 곳까지 왔는데 율리석불은 보고 가야지.... 몇 번이고 발걸음 한곳이지만 언제나 봐도 좋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관음보살입상으로서 본래는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었는데 1979년 7월에 삼기저수지가 완공되어 수몰되게 되자 지금의 위치로 ..
낭성면 현암리에 위치하고 있는 광주안씨가문의 재실입니다. 안현각(安玄閣)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며 1914년에 창건하였으며 그 후 쇠락한 재실을 2003년 12월 26일 개건하여 낙성하였습니다. 마당에는 2006년에 세운 광주안씨현암세거비(廣州安氏玄岩世居碑)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주 안씨(廣州 安氏) 시조(始祖) 안방걸(安邦傑)은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광주군(廣州君)에 봉(封)해졌다고 한다.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三國)을 통일하는 시기에 광주지방(廣州地方)의 향리(鄕吏)로 광주의 안정(安定)에 공적(功績)이 있어 대장군(大將軍)의 군직(軍職)을 가지고, 토성분정(土姓分定)에 의한 성씨(姓氏)를 안씨(安氏)로 스스로 가지고 광주(廣州)를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