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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8/09 (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비의 상태는 양호하며 관찰사이공겸재선정비(觀察使李公謙在善政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비의 옆면에는 비의 건립시기인 병진년(1856)이 음각되여있다. 비의 하부는 현재 땅속에 매몰되여 있다. 이겸재는 한산인이며 자는 공익 이며 (1800~1863년) 순조27년(1827)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ㆍ이겸재선정비(李謙在善政碑)는 ‘은행정’에서 괴산군 사리면으로 넘어가는 1km 지점 고개 밑 좌측 도로 가에 있다. 본래 1796년 9월에 ‘서낭댕이’ 곁에 세웠는데 도로공사를 하면서 서낭이 없어지고 그 곁에 있던 선정비도 뽑혀 방치해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비의 전면과 측면에는 ‘관찰사이공겸재선정비병진구월일(觀察使李公謙在善政碑丙辰九月日)’이라고 쓰여 있다.이겸재는 한산이씨로 형조참판을 역임..
공산성 선정비군에 자리하고 있는 한산인 이겸재의 선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관찰사이공겸재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謙在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겸재는 1855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57년 여름 충청도 일대가 수해를 입자 이에 대해 보고한 사실이 철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1857년 충청우도 암행어사 서승보의 서계에 의하면 전감사 이겸재는 품행이 대쪽같고 아랫사람을 진실하게 대하여 형옥을 철저히 하여 허물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1856년 공주향교의 중수를 주관하고 쓴 중수기현판이 전한다. 승정원일기 2572책 (탈초본 124책) 철종 6년 10월 29일 기미 10/13 기사 1855년 咸豊(淸/文宗) 5년 ○ 有政。 吏批, 判書洪鍾英進, 參判李明迪, 參議李 牌招不進。 以朴齊憲爲刑曹判書..
제민천교영세비(濟民川橋永世碑)는 19세기 전반기에 대홍수로 무너진 둑과 다리를 관민의 노력으로 재건한 후 이를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현재 제민천에는 총 25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민천교는 제일감리교회 부근에서 제민천을 가로 지르는 다리로서, 일제강점기에는 상반교(常盤橋)라고도 불렀다.제민천교영세비의 비문에 의하면 1817년(순조 17) 대홍수로 제민천이 범람하여 다리가 끊어지고 가옥이 침수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때 무너진 다리를 수리하기 위해서 비용 3천여금이 필요하였는데, 공주의 백성들에게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관리들은 이 같은 사실을 비변사에 보고하여 충청수영의 군자미 9백냥, 자체 조달 1천 2백 여량, 그리고 부여· 연기의 공전(公田)에 얻은 5백량을 합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