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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11 (6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도원리는 면 소재지 서북쪽 2㎞ 지점으로 면의 북부에 위치하여 동은 봉황리(鳳凰里), 남은 동산리(東山里), 화전리(花田里), 서와 북은 청원군(凊原郡) 낭성면(낭城面)과 미원면(米院面)에 접하고 있습니다. 본래 상주목(尙州牧) 관할지역으로 ‘술바위’가 있다하여 주성(주성)이라 부르고 부곡(부곡)을 삼았으나, 고려 말기에 청산현(靑山縣)에 붙이고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다가 1906년 보은군에 편입될 때 주성면(朱城面) 관할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평동(平洞)과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지대가 중국의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이 그윽하다 하여 도원리라 고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자연마을 방아-골[마을] 점말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방아산 밑이 됨. 점-말[마을] 도원리에서..
문묘 - Daum 백과 문묘 공자를 정위 좌우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명현 위패를 봉안해 성균관과 향교에 건치한 묘우(廟宇).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자(子思子)·맹자(孟子)를 배향(配享)하고 공문10철(孔 100.daum.net 보은군 산외면 봉계1리 마을입구 왼쪽 야트막한 야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능성인 구인희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에는 문묘직원구공인희송덕비(文廟直員 具公仁喜頌德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향교의 직원으로 오랜 기간동안 지역 유교발전에 공헌한 구인희의 송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습니다.
대안리는 면적 1.62㎢, 인구 31가구 89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3㎞ 지점으로 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은 성티리(星峙里), 서는 법주리(法住里), 염둔리(鹽屯里), 남은 아곡리(峨谷里), 북은 화전리(花田里), 창리(倉里)와 접하고 있습니다.본래 청산현(靑山縣) 주성면(朱城面) 지역으로 높은 지역 안쪽에 있다하여 대안이라 불렀는데 1906년 보은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엽동(葉洞) 일부와 합쳐 대안리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 내-대안(內大安)[마을] →안대안. 대안(大安)[마을] 마을 뒷산에 산제당이 있고 앞에 있는 활인봉(活人峰:424m) 밑에 살면 마을이 편안하다 하여 대안이라 불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대안리(大安里)라 기록하였다..
(50)산외면 봉계리 느티나무 - 보은사람들 (boeunpeople.com) (50)산외면 봉계리 느티나무 - 보은사람들 속리산의 바깥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산외\'라고 불리운다는 산외면에서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마을인 봉계리. 이곳 봉계리에는 약 400여년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다.봉계리의 보호수 www.boeunpeople.com 산외면 봉계리에 있는 보은군 지정 보호수 입니다. 보은-38호로 1982년 8월에 지정되었습니다. 보호수의 품종은 느티나무이며 지정당시 수령은 약 350년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수고는 22미터이며 나무들레는 5.7미터이며 관리는 마을이장이 관리자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느티나무 밑에는 일제강점기시절 마을구장을 지낸 능성인 구하조의 찬송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름 눈이 보이나 보다.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산외면 봉계리 도로를 달리다 눈에 띠어 가보니 일제강접기 시절 구장을 지낸 능성인 구하조의 비석이다. 이 비석이 의미하고 그 시대를 뒤돌아 볼수 있는 단초가 됨을 아는 사람이, 아니 관심이 있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까? 일제강점기 시절의 구장(區長)이라 함은 지금의 이장이나 도시의 통장을 이르는 행정구역의 최말단의 직책으로 구장이 하는일은 지금의 통장이 하는일과 비슷했다. 봉계리 느티나무밑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절 구장을 지낸 능성인 구하조의 찬송비입니다. 구장구하조찬송비(區長 具夏祖讚頌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양옆으로는 찬송의 내용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소화5년(昭和5年,1930년))3월입니다. ..
보은군 산외면 아시리에 있는 능성 구씨 종중 소유의 정문이다. 효자 능성인 구이극과 그의 조카 시영(始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38년 (헌종 4년)에 명정되었다. 구이극은 봉일(鳳逸)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형제간 우애가 극진하였다. 구시영은 이익의 아들이요 이극의 조카로 효행이 지극하였고 흉년이 들어 도적이 집에 들어와 칼로 부친을 위협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도적과 싸우다 부친을 대신해 죽으니 그의 나이 20도 채 못되는 젊은이였다. 1838년 두 사람의 지극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고 1860년(철종 11년)에 증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시리 효자각은 효자현판이 처마밑에 달려있고 정려중수기가 안에 걸려있습니다.효자현판에는 효자능성구공이극지문(孝子綾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