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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11 (6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마로면 수문2리에 있는 돌탑입니다. 돌탑은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안녕을 비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돌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질병, 살(煞), 호환(虎患), 화기(火氣) 등을 막기 위해 쌓은 신앙 대상물이다. 하지만 마을 앞의 허한 방위를 막기 위해서나 특정한 모양의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단순 비보물(裨補物)이기도 하다. 다른 신앙 대상물에 비해 풍수적인 비보(裨補)신앙의 모습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갯마루나 사찰입구에 지나가는 길손이 마구잡이로 던져 놓은 잡석의 서낭당이나 개인이 신을 향한 구도의 마음으로 쌓은 돌탑과는 구별된다. 주민들의 소망과 정성이 모아진 비교적 정교한 마을신앙 대상물이기 때문이다. 돌탑은 돌이 지닌 영구불변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종교 원리를 이용한 ..
마로면 수문2리 노인회관 준공기념비입니다. 수문2리 노인회관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비석의 전면에는 수문리노인회관준공비( 水門里 老人會館竣工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대지 기증자와 함께 노인회관 신축시 물질적인 협조를 한 주민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노인회관 신축시 부족한 토지로 회관 신축이 난항을 겪자 동네주민 유재준씨의 토지희사로 노인회관을 신축할수 있게 되었다. 토지를 희;사한 유재준씨와 많은 물질적인 도움을 준 동네주민 및 출향민들의 이름이 비석에 각자 되어 있습니다.준공비는 2002년 10월에 세웠습니다.
마로면 수문2리에 있는 군보호수입니다. 고유번호는 보은-25호로 지정되었으며 지정시기는 1982년 8월입니다.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지정당시 수령은 약 400년이며 수고는 18미터 둘레는 약 6미터이며 관리는 마을이장이 하고 있습니다. 수문리는 면적 4.34㎢, 인구 103가구 280명(1999년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갈평리(葛坪里), 서는 탄부면(炭釜面), 남은 관기리(官基里), 북은 외속리면(外俗離面)에 접하고 있다. 본래 보은군 왕래면의 지역으로서 수문이 있었으므로 수문(水門)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하리 외속리면 불목리 일부와 탄부면 구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문리라 해서 마로면에 편입되었습니다.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이 길가를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느티나무가..
보은읍 학림2리 경로당 뒷켠에 담벼락 밑에 있는 오위장을 지낸 강재위의 영세불망비 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오위장강재위영세불망비(五衛將姜在渭永世不忘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뒤면에는 비석의 건립시기가 음각되어 있습니다.비석은 광서(光緖)13년(1887년) 정해년(丁亥年)에 세운것으로 되어있습니다.강재위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역은 알수가 없습니다. 비석등을 잘 정리하여 마을회관 앞등 많은 사람이 찾을수 있는곳으로 옮겼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담벼락과 너무 바짝 붙어있어 살펴보기도 어렵습니다. 함림역(含林驛) 은 보은현에서 북쪽으로 십리 길 함림산성 밑에 있던 역으로 충암 김정(김정)이 순창군수로 재임할 때, 이웃 담양부사 박상(朴祥)과 더불어 중종왕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였고, 명분에 어긋나는 상소를 하다가 이..
보은읍 학림2리 마을회관과 진일건축 사이 길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율봉역 찰방을 지낸 허직의 영세불망비이다. 비의 전면에는 음각으로 행율봉찰방허후직영세불망비(行栗奉察訪許侯稷永世不忘碑) 라고 새겨져 있다.비의 하단부분이 파손되여 접합하였다.비의 관리상태는 열악하며 관리가 필요하다.비석의 크기는 80*37*16이다.찰방 허직은 조선조 고종(高宗) 대에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을 지냈습니다 허직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거주지는 개령(開寧)이었다. 아버지는 허좌(許佐)이고, 할아버지는 허돈(許暾)이며, 증조부는 허박(許璞)이다.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의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다음해에 승정원의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며, 곧 청주에 있는 율봉역(栗峰驛)의 찰방(察訪)을 지냈다. 1865년..
돌쇠마을이라 불리우는 수문1리의 마을자랑비입니다. 수문리는 면적 4.34㎢, 인구 103가구 280명(1999년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갈평리(葛坪里), 서는 탄부면(炭釜面), 남은 관기리(官基里), 북은 외속리면(外俗離面)에 접하고 있다. 본래 보은군 왕래면의 지역으로서 수문이 있었으므로 수문(水門)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하리 외속리면 불목리 일부와 탄부면 구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문리라 해서 마로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수문리의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건너말 : 방아실 남쪽에 있는 마을. 방아실 건너쪽에 있음. 돌쇠마을 : 수문 서북쪽에 있는 마을. 수문리 원앙골에서 흐르는물이 팡산 정자나무 밑에서청룡암을 휘돌아 흘러 소용돌이가 생기기 때문에 ‘돌소’라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