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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83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왕이 권종석장군에게 내린 유서이다.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 광서 16년이면 고종27년 경인년 (1890년)에 내린 유서이다. 권종석은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주백(周伯),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권교삼(權敎三)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
충주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목조나한상이다. 나한이란 불제자 중에서 번뇌를 끊어서 인간과 하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각각의 표정이나 모습등이 생동감이 있고 자연스럽다. 나한신앙은 부처의 10대제자나 16나한, 18나한, 500나한을 신앙의 대..
충주시 신니면 화심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경주이씨의 효열비이다 비석에는 전면에 유인경주이씨효열비(儒人慶州李氏孝烈碑)라고 음각되여 있다. 원래의 위치는 이곳이 아닌 듯 하다 아마 마을안에 있던 비석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듯 하다 비석옆에 신니면 노인회 주관으로 이건..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에 있는 마애비.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비의 윤곽을 만들고 글자를 새긴 마애비이다. 마애비는 일반적으로 경승지에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논강리 강월동천은 엄정면 논강리 강현마을 어귀에 위치하여 마을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태면에서 엄정면소재지로 통하는 중간 강현리 어귀에 강현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그 아래쪽 물가에 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바위 암벽의 측변을 이용하여 다듬어 길이 170㎝, 폭 37㎝인 윤곽을 만들고 그 안에 길이 38㎝, 폭 33㎝ 정도 로 ‘강월동천(江月洞天)’이라는 글씨를 종서로 음각하였다. 강현리마을회관 옆에는 1944년에 세운 마을자랑비가 있다. 비는 202㎝×131㎝×69㎝ 크기의 사다리꼴의 화강..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이다.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1640년(인조 18) 정려가 내려졌고, 1701년(숙종 27)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하다 1954년 강음송씨 종중에서 열녀문을 건립하였다. 충주시 대소원면 남쪽에 위치한 매현리의 팔송산 아래 장성백이마을에 위치한다. 장성백이마을은 매산과 수현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다. 1954년 건립 이후 시멘트 사각기둥 위에 재건을 하여 초기에 건립된 모습을..
이성국 효자문은 소태면 동막리에 위치하고 있다.동막리 마을초입을 지나면 삼거리가 보이며 마을 경로당이 눈에 들어온다.경로당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난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 얕은언덕위에 효자문이 자리하고 있다. 이성국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하여 귀화시킨 공으로 원종공신에 오르고 선조로부터 금포와 옥대를 하사받았다. 선조가 환궁한 뒤에는 고향으로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