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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17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증평에 있는 민속체험학습장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둔덕마을에 있다고 했다. 고동색깔의 입간판도 마을표지석옆에 붙어 있고 이 근처 어디겠구나 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나중에 겨우 겨우 혼자 힘으로 찾긴 했지만 중간에 작은 입간판이라도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마음속에 남는다. 이찬의의 묘지는 남하2리 둔덕마을 뒤쪽에 웃골산이라 불리우는 곳에 있다. 둔덕마을 주민쉼터라는 마을주민들의 쉼터에서 20여미터 오르면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후손들에 의하여 비석이 건립되었으며 무덤에는 호석을 두르고 망주석과 상석을 갖추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순국선열이찬의지묘(殉國先烈李瓚儀之墓)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좌우,후면에는 이찬의선생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다. 비석은 후손들에 의하여 1985년 3..
증평읍 대동리 단군전 정문옆에 1988년 김기석의 단군전 건립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내용은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을 맞이하여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기전에 불행이도 국토는 남북으로 양단되고 좌우로 분열되는 민심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어 혼란한 지라 이에 민족정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자연마을인 삼기리, 율치리, 외봉천리, 내봉천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율치와 삼기리의 이름을 따서 율리라 하였다. 삼기리는 미원, 청천, 증평으로 가는 세갈랫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율치 또는 밤티골은 밤고개 밑에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부점촌은 옛날에 솥을 만드는 가게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봉천리는 봉씨가 처음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 봉천의 안쪽과 바깥쪽에는 각각 외봉천마을과 내봉천마을이 있다. 율리마을유래비와 구장 박래응불망비는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 증평읍 율리 뱀티마울입구에 소화11년(1937년)4월3일에 마을주민들에 의해서 구장 박래응 공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내용은 30여년 구장으로 있으면서 어진마음으로 베풀고 개인..
증평을 지나 충주로 가는 도로를 지나다 보면 도안 못미쳐 만나는 곳이 울어바위라고 불리우는 명암마을이다. 증평군지에 의하면 명암마을은 법정동으로는 화성7리에 속한다. 화성7리(花城七里) : ,행화촌(杏花村) : 오늘날 화성5리를 이루는 ‘북촌’, 화성6리를 이루는 ‘남촌’, 그리고 화성7리를 이루는 ‘행화촌’은 본래 ‘명암(鳴岩)’,‘울어바우’,‘우레바우’,‘우레바위’,‘우르배’로 불리던 마을이다. ‘행화촌’은 ‘북촌’의 남서쪽에 있다. ‘행화촌(杏花村)’은 ‘행화, 즉 살구꽃이 많은 마을’로 풀이된다. 진모랭이 : ‘남촌’에서 증평으로 가는 길에 있는 긴 모퉁이이다. 과거 ‘명암’ 사람들은 이 모퉁이를 통해서 증평장을 보러 다녔다. ‘진모랭이’는 ‘긴모퉁이’의 충청방언형이다. 집너머들 : ‘명암’ 앞 ..
도안면 도당3리 은행정에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은행정이라는 동네의 명칭 또한 이 은행나무에서 유래되었습니다.은행나무가 있는 은행정’은 도안면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괴산군 사리면 방축리와 경계를 이루며, 도당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호구총수(戶口總數)』(정조 13년, 1789)에 ‘한성은행정리(漢城銀杏亭里)’가 보이나,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과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관련된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은행정’은 이 마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조사 당시 약 450년 정도이며, 높이는 10mㆍ둘레는 6m이다.1982년 11월에 군(郡) 나무로 지정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13..
고향인 충주를 가다가 들린곳.왜 그렇게 비가 내리는지 다음에 다시 올까? 마음의 갈등을 겪다 비가 멈춘 듯 하여 학교방문증을 목에 걸고 셔터를 누르는데 그 새를 못참고 비가 또 내렸다.사진기는 옷밑으로 넣고 나는 비 쫄딱.... 비석은 증평중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다.비의 전면에는 김재봉님의 공적을 기리는 비라고 적혀있다.후면에는 김재봉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여 있다. 증평읍 장동리 증평중학교 교정안에 1962년에 증평중학교를 세울때 즈음하여 김재봉이 큰 재산을 아무 댓가 없이 증평의 교육을 위하여 희사한바 아무 어려움 없이 학교를 세우는데 일조를 하니 김재봉의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증평중학 기성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1962년 11월에 이 비를 세웠다. 규모는 높이 180샌티 두께 19센티 넓이 120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