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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16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증평읍 내성리에 위치하고 있는 전의이씨의 재실인 충효사 입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위에는 하동현감을 지낸 이의장의 신단비와 신단 그리고 유허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효사(忠孝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막돌을 이용하여 담장을 둘렀습니다.
증평읍 내성리에 있습니다. 내성1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성리에 위치한 보건단지에서 고개를 넘으며 바로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이있다 그 길을 따라 안으로 진입하면 야산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의장의 신단비는 증평읍 내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단비 윗쪽으로는 적벽돌로 두른 신단이 자리하고 있으며 신단옆으로는 이의장의 유허비가 있다. 신단비가 있는 곳에 있는 충효사(忠孝祠)라는 재실은 전의이씨의 재실인 듯 하다. 신단비의 전면에는 가선대부행하동부사전의이공의장신단비(嘉善大夫行河東府使全義李公義長神壇碑)라고 음기되어있다.
내성리는 전의이씨의 집성촌인 듯 하다. 이의장은 자세한 기록은 찾을수 없지만 무과급제로 하동현감을 지냈다. 이의장의 신단비와 유허비는 증평읍 내성리에 자리하고 있다. 내성리는 삼면이 산으로 싸여 있고 동북방향으로는 트여 있다. 산 사이로 분지가 형성된 지형이다. 자연마을로는 안골, 삼성댕이, 참샘골, 화복골 등이 있다. 안골은 증천리 남쪽 시가지 주변 안쪽에 위치하여 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의장(李義長)은 증 영의정 전성부원군 이사관( 贈 領議政 全城府院君 李士寬)의 2남으로 하동현감을 지냈습니다. 이 곳 내성리에 신단비와 더불어 유허비가 자리하고 있다. 신단(神壇)이라 함은 신령을 제사지내기 위한 단을 칭합니다 신단비에는 가선대부행하동부삭사부군신단(嘉善大夫行河東府使府君神壇位)와 정부인 연안이씨와 정..
증평에 있는 민속체험학습장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둔덕마을에 있다고 했다. 고동색깔의 입간판도 마을표지석옆에 붙어 있고 이 근처 어디겠구나 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나중에 겨우 겨우 혼자 힘으로 찾긴 했지만 중간에 작은 입간판이라도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마음속에 남는다. 이찬의의 묘지는 남하2리 둔덕마을 뒤쪽에 웃골산이라 불리우는 곳에 있다. 둔덕마을 주민쉼터라는 마을주민들의 쉼터에서 20여미터 오르면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후손들에 의하여 비석이 건립되었으며 무덤에는 호석을 두르고 망주석과 상석을 갖추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순국선열이찬의지묘(殉國先烈李瓚儀之墓)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좌우,후면에는 이찬의선생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다. 비석은 후손들에 의하여 1985년 3..
증평읍 대동리 단군전 정문옆에 1988년 김기석의 단군전 건립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내용은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을 맞이하여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기전에 불행이도 국토는 남북으로 양단되고 좌우로 분열되는 민심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어 혼란한 지라 이에 민족정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자연마을인 삼기리, 율치리, 외봉천리, 내봉천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율치와 삼기리의 이름을 따서 율리라 하였다. 삼기리는 미원, 청천, 증평으로 가는 세갈랫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율치 또는 밤티골은 밤고개 밑에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부점촌은 옛날에 솥을 만드는 가게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봉천리는 봉씨가 처음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 봉천의 안쪽과 바깥쪽에는 각각 외봉천마을과 내봉천마을이 있다. 율리마을유래비와 구장 박래응불망비는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다. 증평읍 율리 뱀티마울입구에 소화11년(1937년)4월3일에 마을주민들에 의해서 구장 박래응 공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내용은 30여년 구장으로 있으면서 어진마음으로 베풀고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