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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10/04 (6)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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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교된 용촌국민학교 뒷쪽 언덕에 있는 용촌국민학교 교장을 지낸 유무현선생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교장유무현공적비(校長庾務鉉功績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유무현교장은 용촌국민학교 6대 교장을 지냈으며 학교발전과 더불어 동네주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보건진료소를 유치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비석은 1985년에 학구주민일동의 이름으로 건립하였습니다. 지명유래는 용촌리를 흐르는 가산천에 깊은 용소龍沼가 있어 그에 연유하여 용소말이라 불러서 마을 이름을 용촌리龍村里라 하였다. 용소말을 용수말로 부른다.용촌리 단일이며 자연마을은 용수말, 새터말(신대), 도래밤티, 솔맥이가 있고 문화유적으로 조헌이 천기를 보았던 유상지석과 중봉약수, 후율정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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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촌리는 산촌마을로 의병장 조헌 이 임진왜란 때 후율정사를 짓고 호국의 의지를 닦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면적은 3.86㎢이다. 안내면에서 북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월외리, 남쪽은 도율리와 답양리, 서쪽은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북쪽은 보은군 회남면 노성리와 인접한다. 가산천이 북쪽에서 새터말, 용수말, 솔맥이를 거쳐 서쪽 답양리로 흐른다. 용촌리는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의하면 가산리佳山里에 속하였던 마을이다. 1830년대 『옥천읍지』에서는 옥천 관문에서 35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 하였고, 1891년 『신묘장적』에도 가산리에 속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산리를 용촌리와 답양리의 2개 리로 분리하여 용촌리가 처음 신설되었다. 용촌리를 흐르는 가산천에 깊은 용소龍沼가 있어 그에 연유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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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교된 안내면 용촌국민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신문식선생의 공로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교장신문식공로비(校長申文植功勞비)라고 적혀있습니다. 신문식선생은 용촌국민학교 초대교장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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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발걸음을 한곳이지만 이번에는 어찌 열녀문이 보이질 않는다. 온 마을을 다 돌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다른곳으로 옮겼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래전 기억을 다시 더듬어 찾다보니 에그 대나무숲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열녀문의 주위환경도 많이 변하였다. 어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풍경이다. 주위로 장작더미와 건축 폐자재등이 쌓여있다. 누가 저리 했을까? 후손들이 없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주위환경을 정리하여 잘 가꾸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슨 연유로 저런 대접을 받고 있는걸까? 정형준鄭亨浚의 처 전주최씨(全州崔氏, 19세기 말엽) 전주최씨는 연일정씨延日鄭氏 가문 정형 준鄭亨浚의 부인이다. 평소 성품이 온순하고 정숙하여 모든 여성의 본보기로 주민 들의 존경을 받았다. 항상 남편에 순종하여 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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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티리는 도율리 북부에 위치 하며 동쪽은 서대리 가재봉 서편 기슭과 인접하고 남쪽은 도촌리와 평야지로 이웃한다. 서쪽은 용문산으로 용촌리, 북쪽은 평야지로 월외리와 접한다. 율티는 옛말로 밤티라 불렀다. 한자화 하여 밤 율栗 자와 고개 치峙를 써서 율티라 하였다. 이곳은 마을에 산이 많고 논과 밭이 적어 산을 이용한 옛 어른들의 지혜로 밤나무를 많이 심어 밤티라 부르게 되었다. 주작목은 한우 사육과 고추 등을 생산한다. 율티의 자연지명은 다음과 같다. - 밤티골: 밤티재 아래에 있는 큰 계곡이다. - 밤티재(율티, 栗峙): 율티리에서 용촌리로 넘는 밤나무가 많던 큰 고개이다. - 산제바위: 동골에 있으며 마을 산제를 지내는 곳에 있는 바위이다. 앞면에 또아리 모 양의 문양이 있다. - 동골: 밤티마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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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촌리는 도율리 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현리 북부와 산지로 접하고 남쪽은 신촌리, 서쪽은 용문산을 경계로 답양리, 북쪽은 율티리와 서대리 남부와 인접한다.도촌道村은 ‘도가실’의 한자 발음을 따라 ‘도’를 길 도道로 ‘실室’을 마을 촌村으로 사용하여 도촌으로 부르고 있다. 옥천~보은의 옛길이 이곳을 지나 월외에서 보은 장선리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상인들이 쉬어 가거나 물건을 받아가는 도가道街가 있어 도가실이라 하였다. 도가실은 옥천~보은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각종 농산물을 집하할수 있고 길손들이 유숙할수 있는 여사가 있어 지나는 길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귀하고 천한 사람 구별없이 따뜻하고 후덕한 인정을 베푸니 길손들이 고마운 정을 못 잊어 마을 이름을 도가실이라 하였다. 도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