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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2013년 이권종이 위원장이 되어 조성한 친환경지구 조성기업기념비입니다. 조성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의친환경지구 조성사업은 작목반장 이재화의 헌신적인 노력과 작목반원 및 동민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국비 일억일천육백만원 도비 구천육백만원 군비 구천육백만원 자부담 일억오천팔백만원 총 사억육천육백만원을 투입하여 조성시킨 사업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석을 세웁니다. 2013.10.3 사업추진위원장 이권종 수의마을 노인회관 옆 화단에 서있습니다. 초평면 용기리 수의마을 - 인터넷진천자치신문 (jcjachi.com) 초평면 용기리 수의마을 - 인터넷진천자치신문 덕천군 이인(李仁) 이주 후 400년 역사 간직 전통의 맛과 정취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어 진천군 상당수 지역은 산업화가 확대되면서 ..
뜻과 의리를 지킨다는 의미로 수의(守義)마을인가? 마을이름 또한 지난역사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수의마을 노인회관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성대군의 사당이 마을이름과 같이 햇살속에서 빛난다.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은 세종의 여섯째 왕자로 이름은 이유(李瑜)이다.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전전하다 경상도 순흥에 안치되었으며,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1457년(세조 3) 사사되었다. 이후 1738년(영조 14)에 신원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금성대군 (naver.com) 금성대군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왕자.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유(李瑜). 아버지는 세종이며, 어머니는..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이시발의 부인 고령신씨의 묘의 모습이다.이시발의 묘에서 우측으로 약 50여미터 떨어진 야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호석을 두르고 있으며 동자석과 문인석이 있으며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고령신씨[1590-1661]는 승지 신응구(申應榘)의 딸로 이시발과 결혼하여 전처 여흥민씨(驪興閔氏) 소생의 자녀들과 함께 자녀들을 키웠다. 슬하에는 조선 현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경휘와 좌의정 이경억이 있으며, 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원형 봉분으로 호석을 둘렀으며 묘표와 상석을 갖추고, 좌우로 동자석과 망주석을 세웠다.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는 이대건·이시발 묘역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묘소 전면에 묘표석, 동자석 및 촛대석이 각각 1기씩 자리하고 있다. 묘소의 남쪽으로는 지전마을이..
초평면 용정리에 위치한 이시발의 묘소를 찾아 보았습니다. 묘역에는 아버지 이대건과 손자인 이인환의 묘가 있으며 이 묘역에서 50여미터 떨어진곳에 이시발의 부인인 고령신씨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곳 용정리는 이시발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쌍오비각은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쌍오정자터등은 접근이 힘듭니다. 이시발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 이원(李黿)의 고손이며, 이발(李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이다. 6세에 아버지가 죽고, 1589년(선조 22)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임진..
공자의 제자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인 민칭도(閔稱道)가 고려 중엽에 중국의 사신으로 상의국(尙衣局) 봉어(奉御)를 역임하고 여흥(驪興)[지금의 여주]에 정착함으로서 민씨(閔氏)의 시조가 되었다. 입향조는 18세손 민여개(閔汝漑)로 병자호란(1636)이 일어난 이듬해 서울에서 청원군 내수읍에 있는 입암공(立巖公) 민제인(閔齊仁)의 우거지였던 문지 선바위로 낙향하여 정착함으로서 세거지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중시조인 16세 감창공 민제영(閔齊英)의 맏아들 민사완(閔思完)은 청원군 내수읍 입동리에, 둘째 민사굉(閔思宏)은 미원면 북바위에, 셋째 민사건(閔思騫)은 흥덕구 신전동 추동(楸洞)을 각각 세거지로 삼고 번창하니 모두 300여 호의 집성촌을 이루었고 이 고장 12촌락을 민마루 열두동네[閔宗12洞]라 일컽..
내수읍 원통리에 자리한 여흥인 익지(益之) 민광시(閔光時, 1626-1696)의 묘소입니다.민광시(閔光時)는 조선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여흥이다.민건의 장남으로 자(字)는 익지(益之)이며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하였다.을축생(1625년)동경(同庚:동갑)인 이후직(李後稷)등 일곱명은 36세 되던 현종1년(1660년)에 친목도모.학문정진.인격도야.향풍순화등을 목적으로 죽림갑계(竹林甲契)를 조직하였는 바 죽립갑게원중 한명이다. 현재 여흥민씨 재실에 배향(配享)되어있다. 통덕랑 민광시의 묘갈로 원통1리 묘소앞에 세웠다.부인은 공인안동김씨(恭人安東金氏)이다. 비문 전면에는 통덕랑민공광시지묘공인안동김씨부좌(通德郞閔公光時之墓恭人安東金氏祔左)라 쓰여있다.문인석과 동자석과 상석등을 갖추고 있다.후손들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