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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10 (5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다.한 낮으론 덥다고 힘들어 했던 때가 어제 같은데 밭에 배추들은 알알히 살을 찌우고 있다. 양촌마을은 이시발과 관련된 많은 유적들이 있다. 쌍오비각과 더불어 강가에 위치한 정자인 쌍오각터와 청령대라는 각자가 있다. 쌍오정터야 그렇타 하고 암벽에 새긴 청령대 각자를 보려고 또 방문했는데....접근할 방법이 없다. 겨울이 되여 냇물이 얼면 그때나 방문하여 볼수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草坪面 龍亭里 陽村마을) (tistory.com)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草坪面 龍亭里 陽村마을) 용정리 양촌마을은 초평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거나 초평천 건너 지전마을을 통하여 갈 수 있다. . 관련 유적으로 지전마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인 진천..
민건(閔楗)은 조선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민여개(閔汝漑)의 장남으로 통덕랑(通德郞)을 역임하였다. 고향집을 오고가며 가끔씩 시간이 될 때 마다 구길을 따라 차를 몰면서 지난것을 찾아보려고 둘러본다. 내수읍 원통리는 그중에 하나이다. 수확의 계절 가을인가 원통리 마을회관앞에 동리분들이 모여서 감수확에 박스포장이 한창이다. 원통리 지명의 유래는 源通里(원통이,원통)는 본래 청주군 북강내일면의 지역으로서, 원통사(源通寺)가 있었으므로 원통(源通) 또는 "원통이"라 하였는데, 1914年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태산리(台山里)와 내금리(內金里), 수내리(藪內里), 평촌리(坪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통리(源通里)라 해서 북일면(현 내수읍)에 편입되었다. 마을 뒷쪽으로 자리한 여흥민씨들의 선대묘소에..
용정리 양촌마을은 초평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거나 초평천 건너 지전마을을 통하여 갈 수 있다. . 관련 유적으로 지전마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인 진천 이시발 신도비(李時發 神道碑)를 비롯하여 이대건 신도비(李大建 神道碑), 이대건·이시발·이경연·이인환의 묘소가 있다. 양촌마을 마을 입구 다리 북쪽에는 쌍오정 터가 있고 그 아래에 ‘청령대’ 각자가 있다. 마을 가운데에는 완위각 터가 있다. 이시발 신도비는 1658년(효종 9)에 세운 것으로 송시열이 찬하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이정영(李正英)이 전(篆)하였다. 조선 명종 대에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인 이대건과 이대건의 아들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시득이 제천에서 청주 오근장으로 이거하였다가 진천군 초평면..
청주시 용암동, 금천동, 탑동을 흐르는 개울에서 금을 발견하였다는 전설. 조선 후기 철종 때 한 나그네가 걸어서 한양을 가고 있었다. 청원의 쌀안[米院]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청주성 남문 밖 합수머리에 당도하였다. 개울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신을 벗고 발을 담갔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며칠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였다. 발을 물에 담근 채 괴나리봇짐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새소리에 놀라 잠이 깨니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고, 까마귀 떼가 벌겋게 물든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언짢은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머리를 흔든 뒤에 물속에서 발을 빼려고 물속을 보았다. 물에 잠긴 두 발은 곱고 하얀 모래가 덮여 있는데..
청파선생의 사적비는 미원시내 약물내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공은 1919년 12눨 23일생으로 이 고장에서 출생하였다.지역발전을 위하여 일제강점기에는 법원의 지방행정주사로 그 후에는 엽연초생산조합에서 일을 하였습니다.미원면 노인회장등 을 역임하였으며 그 후 창주향교 전교를 역임하는 등 지역발전과 더불어 지역의 유림활동에 지대한 공로가 있어 지역주민과 유림들의 뜻을 모아 비석을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