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오블완
- 화양구곡
- 경주김씨
- 단지주혈
- 사인암
- 티스토리챌린지
- 각연사
- 부여박물관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한독의약박물관
- 문의문화재단지
- 법주사
- 화양동 암각자
- 국립청주박물관
- 밀양박씨
- 선돌
- 부도
- 공주박물관
- 사과과수원
- 효자각
- 청풍문화재단지
- 상당산성
- 문경새재
- 곡산연씨
- 청주박물관
- 보성오씨
- 충북의 문화재
- 효자문
- 충주박물관
- 공산성 선정비
- Today
- Total
목록2022/10 (5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문바위에 대한 유래. 고려시대에 이곳에 문바우(바위)가 있어 문바우고개라 불리기 시작한 이 고개는 부근에 목화밭에서 목화따던 처녀를 스님이 데리고 문바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인가문(人家門)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으며 이 구렁을 인가문골이라고도 했다. 서쪽에 절이 있어 많은 스님이 왕래하였으며 부근에 절에 대한 전설이 많다. 서기 1612년(광해 4년) 해평윤공 (휘 성임)께서 광문병과에 합격한 후 한림삼사를 역임한 뒤 보덕공을 제수받고 낙향 중 인가문 고개를 넘다 목이 말라 사경을 헤메던중 마침 조그마한 샘물이 있어 기갈을 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여 그 후 이 고개를 윤갈미(尹渴迷) 또는 윤갈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문바위는 서기 1970년 도로공사로 매몰되었던 것을 2000년 초에 동민이 합심..
칠성면 도정리에 위치하고 있는 청인약방입니다.도정리는 본래 괴산군 동중면의 지역으로서 깊은 우물이 있으므로 길우물 또는 도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칠성암(七星岩)을 병합(倂合)하여 도정리(道井里)라 해서 칠성면(七星面)에 편입(編入)되었다. 마을중앙에 느티나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모일수 있도록 작은 공원과 함께 쉼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일곱 개의 소나무가 있던 마을로 현재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예전에는 솔밭거리로 불리우던 곳입니다. 청인약방은 1958년 부터 2021년까지 약방으로 운영되었다. 약방은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부족하던 때에 농촌에서 양약을 판매할수 있는 곳입니다. 1950년대에는 약업을 양약존상이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약방이름도 약점-약포-약방으..
진천향교 오르는길에 우측에 있는 새로 신설한 하마비입니다. 진천향교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국립 교육 기관입니다.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는 강학 장소인 동시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향교는 사당인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 그리고 강당인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천향교(鎭川鄕校)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향교골에 있으며, 진천읍 동남쪽 급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진천향교의 문인 풍화루입니다. 조선 태조 때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충북향유회집(忠北鄕儒會集)』에는 고려 충숙왕 때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교육기관이 조선 초기에 재정비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1804..
신도 1리는 어룡과 통미로 구분되어진다. 마을입구에는 지철호공덕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어룡(漁龍)은 원래는 비렁이 마을이라고 하였음. 어룡소류지가 생긴후부터 제때에 모내기르 하고 소류지엔 고기가 떼지어 살았다하여 어룡이라 이름함.통미(桶山)는 어룡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외딴 산이므로 독뫼라고 불리던 것이 와전되어 통미라고 부른다고 함.
청천면 청천리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묘지입니다. 송시열은 조선후기 이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607년(선조 40)에 태어나 1689년(숙종 15)년에 사망했다. 김장생·김집 부자에게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다. 효종 재위 시 왕의 절대적 신임 속에 북벌계획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현종 즉위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주자의 교의를 신봉·실천하는 데 전념하여 거대한 사상체계를 완성했다. 사림의 여론은 송시열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당쟁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숙종 대의 기사환국 때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되던 중 사약을 받고 죽었다.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송성뢰(宋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또는 우재(尤齋). 봉사(奉事) 송구수(宋..
청천면 원도원리 마을회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남직현의 공덕비입니다. 남직현의 공덕내용은 따로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을회관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2000년 마을회관의 건립과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마을회관을 짓도록 토지등을 희사하였던지 마을회관 준공에 많은 공로가 있던지 할겁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마을회관을 지을수 있도록 토지의 희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비석의 건립시기는 원도원리마을주민 일동으로 서기 2000년 3월18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