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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구봉영당은 조선 고종 32년(1985)에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인(左翼功臣) 1등으로 책록되고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진 문충공(文忠公)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을 경기도 양주의 종가에서 옮겨 봉안한 사당이다. 고령 신씨(高靈申氏)문중에서 매년 3월 5일과 9월 5일에 향사한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은 세조 1년(1445)에 그린 좌익공신상(左翼功臣像)으로 추정되는데,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110cm, 세로 167cm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다.오른쪽에 보한재 신숙주의 진영(眞影)임을 알리는 (朝鮮領議政高靈府院君諡文忠號保閑齋申叔舟字부翁眞)이라는 제자(題字)가 있고 왼쪽에 신숙주가 죽은지 75년 후에 다시 칠하였다는 (成廟乙未公卒後七十..
수살제라 함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 주는 신인 동신(洞神)에게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정월 대보름날에 서낭당, 산신당, 당산(堂山) 따위에서 지낸다. 가덕면 인차리 안말수살제 표지석입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마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차일피일 미루웠던 마음이 미워서일까? 사정리 옥개석은 나에게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다. 몇 번이고 구석구석을 뒤져 보았지만 볼수가 없었다.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 겠지만 인적이 끊긴 마을에는 개들의 짓는 소리만 가득하다. 담장 밑에 있는 석탑부재를 찾으려고 했지만 볼수가 없었다. 마침 길에서 만난 동네주민에게 여쭤보니 안보이는지 꽤 되었다고 한다. 아마 누군가의 손을 탄 모양이다.저 마늘밭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밭정리를 하면서 다른곳으로 치웠나? 한번 더 발걸음을 해야할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발걸음을 하여 찾아보았지만 역시 찾을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정리사지 라는 명맥을 유지해주던 옥개석은 사진속에서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또 어디선가 이 곳을 그..
낭성면 관정리 묵정사당옆에 자리하고 있는 고령인 신존식의 종사공적비입니다. 1975년에 고령신문종회에서 종사일에 열심을 내며 헌신한 신존식의 공을 잊지않기 위하여 공의 팔순을 기념하여 종사공적비를 세웠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신존식옹종사공적비( 申存植翁宗事功績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신존식의 공덕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정리 마을 이름이 있게 한 사기점은 고려 때부터 사기를 구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곳곳에 자기 파편이 흔한데 밭을 일구고 땅을 파헤쳐 지금은 사기를 구웠던 가마터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사기점에는 또 옛 절터가 남아 있다. 절터 흔적은 한 가정집에 남아 있는데 기록이 없어 절의 이름이나 창폐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현재 1개씩 남아 있는 탑 옥개석과 장대석으로 보아 고려때 유행하던 양식이어서 고려시대의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행정에는 경주이씨(慶州李氏) 문중이 13대 이상 살고 있다. 행정마을 입구에는 마을에서 쓰던 연자방앗돌이 있고, 청년들이 돈을 모아 만든 유래비가 오가는 이를 반긴다. 청년들은 또 군서-옥천읍간 37호 국도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에 살구나무를 심어 마을의 옛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