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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4/03 (4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월리사 입구의 왼쪽 언덕에 부도와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장방형에 가까운 자연석을 가로 170㎝× 세로 100㎝로 다듬고 중앙에 홈을 마련한 비좌 위에 너비 83㎝× 높이 152㎝× 두께 24㎝의 비신을 세운 다음, 가로 110㎝× 세로 68㎝× 높이 52㎝의 팔작지붕형 개석을 덮은 조선후기 일반형 석비이다.월리사를 중건하고 나서 그 사적을 새긴 비석으로 비액에는 자경(字徑) 9.5㎝의 전서(篆書)로 ‘월리사사적비기(月裡寺事蹟碑記)’이라 쓰여 있으며, 비문은 자경 5㎝의 해서체로 문의현령 윤동형(尹東衡)이 기(記)하고 덕촌거사(德村居士) 오익기(吳益基)가 서(書)하여 1665년(현종 6) 냉절(冷節, 寒食節)에 세운 것으로 명기(銘記)되어 있다. 뒷면에는 시주 명단이 새겨져 있다. 현재는 부도와 금표..
문의면 문덕리 월리사입구초입에 있는 부도입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석종형 부도입니다.상륜부에는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문의면 문덕리 월리사 입구의 왼편 언덕에 서 있는 석종형 부도로서 방형의 편마암계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탑신을 올려놓은 단순한 형태입니다. 탑신에는 아무런 문양이 새겨지지 않았고, 상륜부는 연꽃 봉우리 형태로 만들었습니다.일제시대 이후 수 차례 도괴되어 개울가에 방치되던 것을 마을에 사는 신도들이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부도에 대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탑신부에 ‘이구당포윤(離垢堂抱允)’의 탑으로 병오년 4월 6일에 세웠음이 음각되어 있어 조선후기에 월리사에 주재하던 포윤(抱允) 스님의 사리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립시기는 연호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후..
월리사 대웅전은 1657년(효종 8)에 명현당(明玄堂) 원학대사(元學大師)가 이웃에 있던 신흥사(新興寺)를 옮겨 지은 것으로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 ‘옹정경술(雍正庚戊)’이라는 양각글씨가 있어 1730년(영조 6) 에 한차례 중수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건축양식으로 보아서도 조선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식이다. 자연석으로 높게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의 주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우주(隅柱)가 평주(平柱)보다 훨씬 굵고 높다. 앞면의 기둥 사이는 모두 정자문(井字門)을 달았으며 두공은 조밀하게 배치하고 살미 끝은 날카롭게 휘어졌다.처마는 겹처마로 앞면의 양쪽 끝에는 활주를 세워 하늘을 향해 날아갈듯이 반전한 추녀..
문의면 미천6구 마을회관앞에 있는 동래인 정헌영의 공적비입니다. 정헌영 공적비라고 한글로 적혀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정헌영의 공적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공적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자 정헌영은 산자수명한 농촌 작두산 명기를 타고 1935년 음력 1월6일 새터마을에서 태어나 서울명문고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에 뜻을 두고 귀향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쳐온 겨레의 횃불이다. 미천6구 이장으로 장구한 세월을 봉직하면서 살기좋은 마을 가꾸기로 마을길 조성 지하식수 완전해결 및 하수구 처리등 문화시설에 힘써왔고 특히 우리들의 숙원사업인 노인복지회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미천리6구 527-1번지 30평을 회관부지로 희사하여 마을회관을 준공시키는 등 남다른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헌신봉사하여 마을발전에 기여..
산 좋고 물 맑은 우리 문광(文光)은 괴산군의 중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괴산읍이 인접하고 동쪽으로는 칠성면 서쪽으로는 청안면과 사리면 남으로는 청천면이 경계하고 있고 장자봉(莊子峯 585미터)과 배미산(倍嵋山 546미터)이 웅장하게 높이 솟아 있으며 달천강 지류인 성황천과 광덕천이 흐르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잉근내군(仍斤內郡)에 영속된 이후 신라 경덕왕때 괴양군(槐壤郡)으로 고려초에 괴주군(槐州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조선왕조 태종13년(1413)에 괴산군으로 개명된 이후 1914년에 문광면 행정구역이 10개리(광덕,송평,문법,대명,유평,신기,양곡,방성,흑석,옥성)로 개편되어 5657ha의 면적을 갖고 있으며 문법리와 광덕리의 앞 글자를 따서 문광면이라 칭하였다. 이제 우..
내일이 제 생일입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항상 생일 아침이면 아침에 일어나 먼저 어머니에게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전화를 드렸지요. "그래 미역국은 먹었니?" 하시던 어머니 "아들 낳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가 미역국을 드셔야지요..." 하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이 다 힘들었는데 먹어야지 하시며 웃으시던 어머니. 어머니 하늘나라를 가신 후 생일아침이면 전화 할데가 없어 슬그머니 베란다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입속말로 지껄이곤 했지요. "어머니 알고 계시지요? 오늘이 제 생일인데 하늘나라에서 미역국은 드셨는지요?" 내일은 아내가 미역국을 끓여 주겠지요. 내일은 혼자 욕심내어 어머니 생각을 할겁니다. 생일날이 되면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아도 어머니는 항상 인자한 미소로 저를 지켜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