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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조선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만든 최초의 시한폭탄. 유성룡의 과 훈련도감에서 발간한 에 기록되어 있다. 약선을 발화장치로 이용한 중국의 것과는 달리, 목곡이라는 별도의 장치를 발화장치로 썼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목곡 안에는 원하는 폭발시간에 맞게 감겨진 도화선이 들어가 있었다. 대표적인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860호이다. 2018년 11월, 고창에서 사용되지 않은 비격진천뢰 11발이 발굴되었다. 진주박물관에 전시된 비격진천뢰의 모습입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여적은 1728년에 병사에 제수된다. 영조 4년 3월 29일 기묘 1728년 / 李汝迪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曹口傳政事, 慶尙右兵使單李汝迪, 副護軍朴敏雄。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한규는 숙종45년 (1719년)에 경상우병사에 제수가 된다 비석의 전면에는 병사이공한규청덕선정비(兵使李公漢珪淸德善政碑)라고 적혀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제수받은 다음해인 1720년 경자년5월(庚子年五月)로 기록되어있다.진주성 비림에 위치하고 있다. 이한규(1662-1729)조선 중기의 무신(武臣)으로 충청수군절도사, 경상우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숙(來叔)이며, 전주 이씨 화의군(和義君)의 5세손인 이상지의 아들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뒤 도총관(都摠管)을 비롯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와 충청수군절도사(忠淸水軍節度使), 경상우병마절도사(慶尙右兵馬節度使) 등을 지냈다. 공사(公私)가 분명하게 일을 처리하여 백성들이 믿고 따랐으며, 경상우..

조선 중기 진주 목사인 이상일(李尙逸)[1600~1674]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상일은 1650~1654년에 걸쳐 진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보덕(輔德)으로 전임되어 진주를 떠나자, 1654년(효종 5)에 이상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973년에 옮겨와서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 가운데 있다. 비의 제목은 ‘牧使 李尙逸 去思碑(목사 이상일 거사비)’이다. 비문에 “四年爲百里安(사년위백리안 : 4년 동안 백리가 평안하였다)”이라는 글귀가 있어 이상일이 진주목사 재직 시 선정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순조3년 1803년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이문철은 경상우병사에 제수됨을 알수가 있다.權襈, 以備邊司言啓曰, 卽見摠戎使李仁秀, 水原留守曺允大, 廣州留守金載瓚, 江華留守韓用鐸, 京畿監司徐榮輔, 水使崔東岳, 永宗防禦使尹頣東, 平安監司金文淳, 兵使申大偀, 黃海兵使徐有和, 江原監司申獻朝, 統制使李潤謙, 慶尙左兵使金處漢, 右兵使李文喆, 忠淸兵使金爀 병사이공문철거사불망비(兵使李公文喆去思不忘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석은 성민들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무진3월(戊辰3月)로 미루어 보아 1808년 3월이다.어떤 이유로 비석이 훼손되어 신묘(辛卯)12월인 1831년에 성민들에 의하여 다시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는 1604년(선조 37) 이래로는 경상도 우병영, 1895년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 이래로는 경상남도관찰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령 이하 모든 관리와 일반인은 말에서 내리라는 표지로 이 비를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안에 있는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 입구에 세워져 있다. 비에는 병사 및 관찰사 이외의 모든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 들어가라는 뜻의 ‘수령이하개하마비(守令以下 皆下馬碑)’의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보존상태가 좋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