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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주시 엄정면 원곡리 하일마을앞에 위치한 당집인 천제단의 위패로 옥황상제 태상노군 북두칠성 삼존위를 모신다.하일마을의 당고사는 음력 정월 14일에 거행되는데 최근 당집을 새로 복원하고 신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교체하였다. 하일마을은 한반도를 닮은 마을자랑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제일은 매년 음력 정월 14일로 정해져 있고 오후 5시에 지낸다. 제주와 축관은 당고사 일주일 전에 생기복덕을 가려서 정한다. 제주로 선출되면 3일 전에 자기 집 대문에 금줄을 친다. 당에 치는 금줄은 ‘3일 부정을 막는다.’하여 3일 전에 미리 당 주변에 빙 둘러서 친다. 당산 입구에는 제일 당일 당청소를 하면서 금줄을 친다.제수 비용은 대동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 실과, 통포, 탕국, 백설기..
광서16년(고종27년 1890년)병조에서 권영수에게 내린 임명장이다. 교첩이라 함은 조선시대에 5품 이하의 문무관원을 임명할 때 내리던 사령장(辭令狀 : 告身)을 말한다.5품 이하는 낭계(郎階)라 하며,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친 뒤 왕명을 받아 이조 또는 병조에서 발령하였다.연호 위에 찍는 도장[印]은 ‘이조지인(吏曹之印)’ 또는 ‘병조지인’이다.교첩의 서압(署押 : 도장 대신 글씨로 자신을 표시하는 행위)은 참의 이상의 당상관에서 1인과 정랑·좌랑 중 1인 두 사람만이 하게 된다.교첩도 교지와 마찬가지로 그 가문의 사환(仕宦)을 입증하는 자료이므로 소중히 보관해왔기 때문에 조선 초기 및 전기의 것이 비교적 많이 전래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관료정치 및 양반사회의 성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왕이 권종석장군에게 내린 유서이다.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광서 16년이면 고종27년 경인년 (1890년)에 내린 유서이다. 권종석은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본관은 안동. 자는 주백(周伯),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권교삼(權敎三)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1848년(헌종 14)에 출생하였으며 여덟 살 때 부모를 잃었다. 1863년(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이 되었고, 1881년(고종 18) 의정부공사관이 되었으며 1883년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1884년 선전관으로 있을 때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이에 동료 4명과 함께 왕을 호종하여 13일간 옷도 벗지 아니하고 왕의 신변을 보호하였다.1885년(고종 22) 포도청종사관, 1886년 훈련원주부, ..
충주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목조나한상이다.나한이란 불제자 중에서 번뇌를 끊어서 인간과 하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각각의 표정이나 모습등이 생동감이 있고 자연스럽다. 나한신앙은 부처의 10대제자나 16나한, 18나한, 500나한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이들 나한은 삼명(三明)·육신통(六神通)·팔해탈법(八解脫法)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중생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믿어졌다. 이들 나한을 모셔놓은 당우를 나한전(羅漢殿)이라고 하며,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나한들을 봉안한다. 나한전에는 500명의 나한상이 있는 오백나한전과 16나한상을 안치한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나한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불교의식을 나한재(羅漢齋)라고 하며, 왕실과 민간에서..
조선시대의 노비문서이다. 1646년(인조24) 정양이 정지로 부터 노비 6명을 무명 40필과 쌀 10섬에 구입했다는 노비문서이다 이 문서를 지참하고 관청에 신청하면 관청에서 매매공증문서를 발급해 주었다 "1725년(영조 1년) 2월 15일에 노직(老職) 자헌대부 장선명이 가난 때문에 영평현 일동면 청계동에 있는 밭을 유생원댁 노(奴) 귀성에게 11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반이라도 가난 때문에 남의 집 노비에게 전답을 팔기도 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상거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매매 고문서 해제집이 발간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조선시대 토지, 가옥의 매매 고문서 991종에 대한 해제집 '고문서해제 Ⅸ'을 펴냈다. 매매 고문서는 전답과 가옥, 산지의 매매 가격 변화는 물론 조선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