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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영산리는 감곡면 소재지에서 8㎞ 떨어진 지점에 있다. 원통산 자락에 위치하며 앞으로는 공산정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감미곡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 행정구역 개편 때에 거동(巨洞), 영촌(嶺村), 공산리(公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영촌과 공산리에서 이름을 따서 영산리라 하고 감곡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거둥터, 건너새터, 공산정이, 두덩골, 바리고개, 비아다리, 상짓말, 알고지, 양짓말, 엄장골, 우뢰편, 잔자골, 재말(영촌) 등이 있다. 거둥터는 전에 임금이 거동하였던 곳이라는 뜻이다. 공산정이는 마을 뒷 산이 공(公)자 처럼 되었으며,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덩골은 지형이 두덩처럼 생겼다고 한다. 상짓말은 산지기가 사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유적..

점심때 쯤 고향에 계시는 작은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지내니?" 코로나로 인해 자주 방문도 못하고 했던 차에 누이의 전화가 반갑다. 집에서 고들빼기 김치를 담다가 고들빼기 좋아하는 막내생각이 나서 전화 했다며 시간날 때 고향 너머 와 고들빼기 김치를 가져가란다. 예전에 어머님 생전에는 항상 고들빼기의 쌉싸르한 맛이 좋다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고들빼기 김치를 담그어 주셨는데... 막내동생 고들삐김치 좋아하는걸 작은누님이 생각이 나셨나 보다. 생전 엄마표 고들빼기 김치는 아니더라도 동생 사랑하는 마음 가득한 누님표 고들빼기를 내일은 먹을수 있겠다. 때 되고 조금 색다른 반찬을 만들면 항상 잊지않고 연락주는 누님들이 계셔 좋다. 내 마음속 가득한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자리를 누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채워주는..

동학사 가는 길가에 있는 송덕비입니다. 절에 많은 시주를 한 모양입니다. 大施主乾命 金達煥 坤命金貞淑兩主頌德碑(대시주 건명 김달환곤명김정숙양주송덕비)라고 적혀있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 절터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이 곳에 전해지는 3구의 석불 가운데 완전한 2구는 작은 암자에서 모시고 있고, 머리 부분이 없어진 1구는 우물에 있다. 석불 3구는 모두 한손이 다른 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아마도 함께 모시기 위해 만든 비로자나삼존불로 생각된다. 얼굴은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어깨는 움츠린 듯하다. 옷의 표현이 두꺼워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가슴 부근에 있는 손의 모습은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이 불상은 둥글고 긴 얼굴과 평판적인 신체에 곡선적인 조각 등 고려 전기에 유행한 자연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또한 지방 조각의 성격도 드러내고 있다.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신복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가 처음 세웠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표현하였는데,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꿇어 앉은 자세를 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원통형의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있는 얼굴은 풍만한데다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 복스럽게 보인다. 관 밑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양 어깨에서부터 걸쳐 내져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보살상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팔찌, 목걸이, 옷주름은 굵은 띠처럼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둔중한 조각수법을 보인다. 이러한 자세나 조각 솜씨는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