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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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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우 마을 뒤편에 광산김공삼순송덕비(光山金公三淳頌德碑)와 전참봉김용준시혜불망비(前參奉金容濬 施惠不忘碑)가 있다. 배바우 주위에는 웃골, 비들먹재, 점말, 피실, 황골, 맘마골, 분터골, 왜마루 등이 있다. 점말서 강가로 내려가다 연지동이 있고 강가에 안피실이 있는데 모두 폐촌되어 빈터만 남아있다. 배바우 뒷편에 있던 비석들이 무슨일인지 공원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송덕비와 불망비가 있던 곳이 사유지로 경매로인해 주인이 바뀌면서 이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신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옥천군이 광산 김씨 문중 효자비각에 수천만 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펼쳤지만 2년도 안 돼 철거되는 사태가 벌어져 허술한 문화재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문제의 문화재는 안남면 연주리 소재 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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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저수지를 축조하는데 물심양연으로 힘쓴 사리수리조합 조합장 유복성과 이사 윤남로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은 같은 시기인 1980년 2월에 같이 건립 되었습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이 생활하는데 물의 중요함은 어린아이의 젖과 같거늘 하늘은 사람의 소망을 모두 들어주지 않으며 홍수와 가뭄으로 농민들을 항상 불안하게 한다. 이런 홍수와 가뭄을 해소하여 주신 선각자가 계시니 그는 유복성(윤남로)선생이라. 공은 향토발전의 지름길이 치수에 있음을 공감하고 저수지를 설치하여 천추만대에 옥토를 마련코자 4년여 동안 향민을 설득하고 감화시키는 등 열심으로 노력하여 서기 1964년 8월2일에 이 고장의 보고인 백마저수지를 준공하였다. 이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선생의 노력은 정말 끝이 없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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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읍 장대리 오창초등학교에 있는 양주인 조중철의 송덕비입니다.비석의 전면에는 양주조공중철송덕비(楊州趙公重喆頌德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조중철의 송덕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조중래는 의사로서 오창에서 인술을 펼치었다.1904년에 출생한 양주인 조중철은 어린시절부터 총기가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충절의 의를 다하였다. 1952년에는 의사검정을 치루어 합격한 후 1954년에 의원을 개원하여 귀한 인명을 널리 건지고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으며 있는 사람에게는 실비를 받으며 병을 고쳐주었다. 광복후에는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지방민심을 평안케 하였으며 1954년부터 4년간은 고장 면의회의장을 1957년 부터 4년간은 오창중학교에서 1963년 에서 4년간은 오창국민학교에서 각각 기성회장으로 뽑히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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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중간말에 있는 향나무샘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예전에는 이 곳이 동네의 소식을 듣고 이야기 하는 곳이었을 겁니다. 상수도가 놓아지면서 우리들의 주위에서 사라져 가는 풍경중에 하나입니다. 우물가에는 향나무를 심었는데 향나무의 향으로 살균과 살충효과를 보기위해 심었습니다. 연주리는 연지동(蓮池洞), 주암(舟岩), 고성리(古城里)가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739년 여지도서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가 살았다고 두 마을로 구분하여 기록되어 있으며 1891년 신묘장적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때 주암리, 연지동, 고성리를 합하여 연주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7년말 현재 연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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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사담리 보광초등학교앞 비석거리에 있는 단양인 우효동의 효자비입니다. 동네에 우효동의 효자각이 있었으나 쇠락하여 없어지고 1987년 새로운 효자비를 건립하여 세웠습니다. 효자비의 전면에는 효자증통훈대부사헌부감찰단양우공효동지비(孝子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丹陽禹公孝東之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우효동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전국문화재총람등에는 아직도 우효동의 정려각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효동(禹孝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그의 본관(本貫)은 단양(丹陽)이고 자(字)는 성원(聖源)이며 호(號)는 만취당(晩翠堂)으로 천성(天性)이 순효(淳孝)하였다. 부모의 병이 있을 때는 항상 몸소 약을 지어서 드렸는데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어 이웃이 모두 지극한 효성에 신(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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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사담리에 위치하고 있는 수살맥이 이다. 마을의 안녕을 해치는 요소 가운데 물은 위협의 요소였다. 수재를 당하는 쪽에서 이를 막고 자연재해를 일정한 풍수원리에 입각해 마을 어귀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수구맥이의 요체이다.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이 이러한 전통적 사유를 낳았으며, 신앙적으로 승화하였다.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또는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건물, 나무, 탑 등을 이용한다. 사담리 도로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말채나무밑에 거북형상의 돌을 중심으로 냠,녀선돌이 위치하고있다. 선돌과 돌거북과 같이 있는 보호수는 수종은 말채나무로서 1982.11.16일에 괴산군 보호수 제 77호로 지정 되었으며 지정당시 수령은 520년으로 적혀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