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보성오씨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문의문화재단지
- 공산성 선정비
- 티스토리챌린지
- 각연사
- 효자문
- 국립청주박물관
- 화양동 암각자
- 밀양박씨
- 한독의약박물관
- 문경새재
- 효자각
- 청주박물관
- 부도
- 법주사
- 경주김씨
- 청풍문화재단지
- 단지주혈
- 오블완
- 충주박물관
- 충북의 문화재
- 선돌
- 곡산연씨
- 공주박물관
- 부여박물관
- 화양구곡
- 사과과수원
- 상당산성
- 사인암
- Today
- Total
목록2022/01 (4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쌍이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일면(山內一面) 지역인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정리(松亭里), 상이리(上耳里), 하이리(下耳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서 상이와 하이의 뜻을 따라 쌍이리라 해서 미원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오미(梧山) : 귀바위 아래쪽에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보리재(牟城) : 오미 앞 서쪽 내 건너 있는 마을. 귀바위(耳岩) : 귀바위가 있는 마을로 上里(위쪽마을), 下里(아래귀바위)마을이 있다. 미원면 쌍이2길에 있는 선돌입니다. 작은도로에서 동네 초입 은행나무 밑에 서로 마주보고 서있습니다. 선돌의 모양으로 보아 암수 한쌍의 선돌입니다. 숫선돌로 보이는 선돌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관심을 몸에 두르고 있습..

현도면 달계리 남근석옆에 돌보는이 없이 외롭게 서있는 시헤비입니다. 달계리는 보성오씨의 집성촌입니다. 비석의 상태등으로 보아 해방후에 세워진 비석으로 추정됩니다. 주사(主事)라는 호칭이 사용된 시기가 1948년 이후부터 입니다. 비석에는 총탄의 흔적으로 보이는 아픔의 자국도 보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주사오성수시헤비(前主事吳聖秀施惠碑)아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기근이나 흉년에 동리주민들을 위한 오성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현도면 달계리에 있는 목장승과 기자신앙에서 유래된 남근석(男根石)을 세워놓았습니다. 마을주민들의 아픔과 바램을 빌던 기도처로 이용되던 곳입니다. 도로 가까이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있습니다. 목장승은 근간에 새로 세운듯 하며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신앙에서 유래된 기자석(祈子石)은 아들을 낳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남성의 성기를 닮은 남근석을 많이 이용합니다. 달계리는 본면 남부 지방에 위치하며 동은 하석리, 서는 매봉리, 남은 노산리, 북은 선동리에 접한 산촌마을이다. 행정리는 달계1,2,3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달계리는 본래 문의군 일도면의 지역인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덕리, 중덕리, 사기점, 솔골, 제궁촌을 병합하여 달계리라 하..

가끔씩 사용하던 볼펜이 수명이 다 되었나 보다. 요즈음은 흔한것이 볼펜이라 안나오면 그냥들 많이 버리지만 어려서 부터의 습관인지는 몰라도 꼭 볼펜심을 따로 구입해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 학창시절 학기초가 되면 아버지는 색깔별로 볼펜과 볼펜심을 사다주셨다. 그리고는 말씀을 해주셨다. 작은것 부터 아끼는 버릇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남에게 무엇이든 빌리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절약정신을 강조하셨던것 같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자금까지 꼭 볼펜심을 여유있게 사다 놓고는 한다. 작은 문방구에는 볼펜심이 없어 일부러 큰 문방구나 인터넷을 이용하곤한다. 나의 이런 작은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물론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작은 절약이 세상을 ..

덕유리는 문의면의 서부에 위치 하였던 마을로 동은 산덕리, 서는 현도면 하석리, 남은 신대리, 북은 품곡리와 접하고 있다. 마을 서쪽 구봉산(370미터)이 동사면 골짜기에 발달 한 마을로써 마을 북쪽 서사면에 내덕 마을이 있었고 내덕 동쪽 냇가에는 외덕 마을이 있었다. 외덕 동쪽 도로 건너에는 건너들이 있고 그 남쪽 산 기슭에 새말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생미들이 있다. 새말 서쪽 도로가에 광원 마을이 있고 광원 남쪽 곁에는 웅곡 마올이 있다. 그러나 대청댐 건셜로 인하여 1980년에 수몰되어 주민은 모두 타지로 전출되었다. 조선시대 부터 역이 있던 곳으로 역촌이 형성 되었고 교통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역을 관리하는 직원의 관사와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 가 발달한 마을로 주민의 생활수준이 높았던 지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