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티스토리챌린지
- 상당산성
- 충북의 문화재
- 보성오씨
- 청주박물관
- 효자문
- 법주사
- 단지주혈
- 화양구곡
- 부도
- 문의문화재단지
- 경주김씨
- 국립청주박물관
- 각연사
- 공주박물관
- 부여박물관
- 공산성 선정비
- 충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효자각
- 사인암
- 곡산연씨
- 화양동 암각자
- 오블완
- 사과과수원
- 밀양박씨
- 선돌
- 한독의약박물관
- 문경새재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Today
- Total
목록2022/01 (45)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TPrVx/btrptgrd3mV/maUlbD1xiuKDK6n2YFkmJ1/img.jpg)
충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고인돌입니다. 이 고인돌은 대청댐이 건설 되면서 물에 잠길 위기에 놓이게 되자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978년에 이전하여 복원하였습니다.덮개돌은 판석형태로 잘 손질되어 있으며 남방식 고인돌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덕리는 마을 동쪽 샘봉산 서쪽 계곡에 발달한 마을로 마을 서쪽은 대청댐과 인접되어 있다. 동쪽은 보은 회남면 서는 신대리 남은 소전리 북은 산덕리와 접해있다. 마을의 주된 부락은 압실 마을이며 압실마을 굴짜기 입구에는 새터마을이 있었으며 새터 남서쪽 금강 유역에 샘골마을이 있었다. 새터 동쪽 할목들에는 토항 마을이 있었고 토항 북동쪽에는 염촌(점촌) 마을이 있으며 토항 동남쪽 굴짜기 월리사 입구에는 동구 마을이 있었다. 토항 마을 앞에는 땅이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RtXZz/btrlhBUNwih/srfQ3n6oFZyOwNXrNtU9F1/img.jpg)
1717년(숙종 42)에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1553∼1630)을 주향으로 후에 주일재(主一齋) 윤승임(尹昇任, 1583∼1688), 옥계(玉溪) 박곤원(朴坤元, 1477∼1607), 돈암(遯菴) 윤사석(尹師晳)을 차례로 추배하였다. 1871년(고종 8)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89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위에는 세심정 추월정, 만경정등 정자들이 있으며 파평윤씨 재실인 경모사도 자리하고 있다. 옥화서원의 주향자인 이득윤의 본관은 경주이다. 고려말 문신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후손이며 사복사판관 이곤(李鯤)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잠(李潛), 어머니는 진주강씨 강응청(姜應淸)의 딸이다. 형조좌랑‚ 의성현령‚ 괴산군수 등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역학과 음악에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JxKjR/btrp95hhlj5/ibkXFnkKqGBKoZbbtDlTy1/img.jpg)
충주댐 수몰지구 유적조사의 일환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982년에 발굴하여 이 곳으로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짝을 이루어 서있는 선돌은 크기와 외형적 특징이 서로 다르며 1호 선돌은 위가 편평하여 여성선돌로 2호 선돌은 위가 뾰족하여 남성선돌을 의미 하고 있습니다. 1호와 2호 선돌을 중심으로 11개의 둘레석이 배치되어 있어서 당시의 중요한 회의장소나 제의 집행지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발굴당시 선돌의 바닥에서 구멍무늬토기조각과 붉은간 토기조각이 출토되었습니다. 본동의 서쪽에 느티나무거리에 위치했었다. 강을 향한 여성선돌(180×80×25㎝)과 뒤에 남성선돌(139×65×28㎝)은 황석리 초막골 부처바위에서 떼온 것으로 선돌 위를 부처라 한다.현재 황석리 선돌은 충북대학교박물관 교정으로 이전하..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dc6VJI/btrp2DAweeH/KFHKRHFgKpmpsFzkhdCMPK/img.jpg)
내수읍 저곡리가 고향인 석조보살입상입니다. 자연석의 한쪽면을 다듬어서 만들었으며 자연석의 일부를 광배로 표현하였습니다. 두부부분과 광배부분이 파손되었지만 손모양이나 옷주름과 허리띠등의 조각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석불입니다. 현재는 충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습니다. 내수읍의 저곡리楮谷里(탁골,楮谷)는 본래 청주군 산외일면의 지역으로서 닥이 많이 있으므로 닥골 또는 저곡(楮谷)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年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매평리(梅坪里)와 비중리(飛中里) 일부를 병합(倂合)하여 저곡리라 해서 북일면(현 내수읍)에 편입(編入)되었습니다. 석보보살입상의 안태고향은 저곡리에서 절터가 있었던 찬샘골이 아닌가 추측을 해봅니다. 저곡리 불상이 취하고 있는 수인인 시무외여원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QwPPZ/btrp8rLErjx/tQhZ4cIDSFf36QA6om8alk/img.jpg)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제가 조선농민의 정신을 통일하고 장악하기 위한 식민지 농촌사상 통제정책에 산물이다. 또한 전국에 있는 사직단을 없애면서 그 반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방법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직단은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주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왕실의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어, 국가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민족정신의 말살에 그 뜻을 두었으며 사직단이 있는곳에 민족정신을 말살하기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일제는 천지신단비의 설치장소와 크기또한 조경방식 까지도 제시하여 통일시키려고 하였다.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농촌진흥 이라는 미명아래..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Dg2JK/btrfVqQxcPr/MWeAkL0PxDKCaWLciroCWK/img.jpg)
마장리는 도장리 서쪽, 문수산 아래에 위치한다. 동쪽은 두릉, 도곡리에 인접하며 남쪽 은 대안리 북단, 서쪽은 귀평리 안남 도농리 소야, 북쪽은 오덕리 팽정과 평야지로 접한다.마장리에는 옛날 관리들의 여행자 숙소인 은천원이 있었고, 그곳에 말을 매어 놓는 곳 이 있어 말바탱이라 불려서 마장馬場이라 했다. 옛날부터 풍수해와 가뭄이 없고 들이 넓고 풍요로와 청산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청산의 제일은 마장이다’라고 구전 된다. 주요 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배출한 옥천육씨이며, 마을 뒷산에 목사공 선대 묘소와 재실이 있다. 한우 사육 농가가 많으며 벼농사와 사과, 인삼 등을 재 배한다. 문화유적으로 조계종 문수암과 태고종 대성사 미륵부처 석상 등이 있다. - 마장(馬場, 말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