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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6 (2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용암동 보살사부도 사진을 찍다가 가족묘원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용암동 주변이 택지개발이 한창입니다. 동남지구 쪽으로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수용된 많은 땅에 있던 묘소들이 이장을 하여야 하는 바 개개인의 묘지를 다시 이장하여 조성하지 못하고 가족묘원을 만들었습니다. 용암동 보살사부도전 위로 새로 조정된 청주한씨의 가족묘원입니다. 쌍수리 운동동 월오동동 많은곳에 산재되어 있던 조상들의 무덤을 이장하여 한곳에 가족묘원을 조서하였습니다.청주인 한광근과 한태현의 후손들의 가족묘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가족묘원 위로는 조선조 정조시절 진사를 지낸 청주인 한현의 묘소가 있습니다. 가족묘원은 2021년에 조성하였습니다.

보살사 부도를 만나러 갔더니 입구쪽에 보이지 않던 비석이 보인다. 비석의 상태로 보아 신설비석은 아닌 듯 보인다. 주변에 택지개발등으로 인하여 그동안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던 청주한씨들의 무덤을 한군데로 모아 가족묘원을 조성하면서 새로 갔다 놓은 비석인 듯 합니다. 경신년이면 서기로 따져서 1920년과 1980년인데 비석의 상태로 보아 1980년대로 추정이 됩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청주한씨천(.淸州韓氏阡)이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비석의 건립시기인 경신원월이십일립(庚申元月二十日立)이라고 써 있으며 청주한씨가족묘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阡 - 두렁(두둑. 논이나 밭 가장자리에 경계를 이룰 수 있도록 두두룩하게 만든 것).가문의 땅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승정원일기 1764책 (탈초본 93책) 정조 20년 6월 10일 갑신 41/44 기사 1796년 嘉慶(淸/仁宗) 1년 忠淸道, 進士韓鋧·李應福, 幼學趙重參·... 용암동 보살사부도 윗편에 자리하고 있는 청주인 한현의 묘지입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정조20년 1796년 충청도에 진사로 제수되었음을 알수있습니다.묘지는 호석과 상석등은 후보되었으며 망주석2기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취봉당탑(就峯堂塔)옹정8년 경술5월제자아(雍正8年 庚戌5月弟子芽)옹정8년이면 1730년으로 경술년이며 영조6년이다.같이 있는 자우당탑이 서기 1718년이므로 취봉당탑과는 약 12년의 간격이 있다.부도의 전체높이는 약 192센티이며 촤대폭은 85.4센티이다. 보살사 가기전 왼쪽 산허리에 조성되여 있는 민묘군밑에 자리하고 있다.부도의 전면에는 취봉당탑(就峯堂塔)이라고 적혀있다.부도의 상태는 양호하며 보주는 앙련의 모습이며 연주문을 새겨 놓았으며 연주문 밑으로는 복련모양의 화문을 새겨 놓았다.부도의 대좌로는 팔각향의 돌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하고 있다. 당호도 선명하다.자우당탑(紫藕堂塔)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부도의 크기는 전체높이 220센티이며 부도의 최대 폭은 90.5센티이다.부도의 관리상태는 양호하다.부도..

보살사. 용박골. 그리고 부도, 다시 보아도. 꽃보다 아름다운 너, 한참이고 눈맞추고 나는 졸음에 겹다. 꽃향기 진하다. 2022.06.09 청주 보살사부도.

봉방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방과 하방의 ‘방’자와 봉계동의 ‘봉’자를 합쳐 봉방동(鳳方洞)이라 하였다.본래 충주군 북변면 지역으로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북변면 7개 리 중에 방정동리(方井洞里)가 현재의 봉방동 지역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마을 이름은 1898년에 나온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서 확인된다. 이곳에 보면 봉계와 상하방이 나온다. 봉계와 상하방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주면 봉방리가 되었고, 금대, 신촌, 칠지, 대가미 일부 지역이 봉방리에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봉방리는 충주천 남쪽에 동서로 길게 뻗은 마을이 되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었고,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되었다. 봉방리는 봉방리1구와 봉방리2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