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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92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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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의 제7곡인 와룡암입니다. 길게 뻗은 암석이 마치 누워있는 용과 같다하여 와룡암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청천면 화양계곡 와룡암(靑川面 華陽溪谷 臥龍巖)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와룡암(靑川面 華陽溪谷 臥龍巖) 궁석이 시내변에 옆으로 뻗혀 있어 전체 생감이 마치 용이 꿈틀 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다. 길이 만들어지면서 길 밑으로 바위가 묻혀있어 그 모습이 많이 변하였다. king6113.tistory.com 와룡암 - 임상주 - 維彼臥龍巖 저 누워 있는 와룡암만은 若垺乘風雲 풍운 타고 오르는 것 같네. 宛在水中央 완연히 물 한가운데 있는데 蒼痕背成文 푸른 물결이 얼룩문이 되었네. 知是南陽翁 알겠도다, 제갈공명이 變化爲此石 변화해 이 암석이 된 것을. 平生興復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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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면 화양계곡 학소대(靑川面 華陽溪谷 鶴巢臺) (tistory.com) 청천면 화양계곡 학소대(靑川面 華陽溪谷 鶴巢臺) 바위산 위에 낙낙장송이 오랜 성상의 옛일을 간직한채 여기저기서 있는데,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이름을 학소대라 하였다.층층 바위암벽과 그 사이의 소나무들의 king6113.tistory.com 계곡에 물이 한창이다.밤새 내린비가 계곡을 가득채우고 앞으로 달린다. 조용한 계곡사이로 물소리가 소리내여 달리며 기운을 낸다.계곡에 접해 있는 학소대에는 학의 모습은 간곳 없고 푸른 소나무들만 층층암석 사이를 수놓고 있다. 학소대 암각자를 찍으려고 생각했는데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수량이 줄고 건널만 하면 도전해 볼일이다. 학소대 - 임상주 - 鶴巢問何年 학이 깃든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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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모시는 인물에 대한 문장 등을 기록해 두는 것으로, 이 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모신 화양서원의 자리에 놓여 있다. 화양서원은 조선 숙종 22년(1696)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창건되던 해에 현판을 하사받아 숙종 42년(1716) 어필로 현판을 달았다. 전국의 사액서원 중에서도 가장 이름있고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으나, 그릇된 세금징수로 심한 민폐를 끼쳐 철종 9년(1858)에 폐쇄되고, 논란 속에 고종 7년(1870) 건물이 헐리었다. 비는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뒤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숙종 42년(171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윤봉구가 지었다. 서원이 헐리면서 땅속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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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邊石崖闢 시냇가에 바위벼랑 열렸으니 作室於其間 그 사이에 서실을 지었노라 靜坐尋經訓 조용히 앉아 경전의 가르침 찾아 分寸欲躋攀 분촌이라도 얻으려고 노력하고파. 「화양동 바위 위의 정사에서 읊다(華陽洞巖上精舍吟)」 流水桃花在 흐르는 물에 복숭아꽃 뜨고 桑麻雨露多 뽕나무 삼나무에 우로가 많으니 俗傳無量號 무량이라 전하는 마을 이름 知是武陵訛 무릉도원의 와전인가 하노라. 「무량촌 사람에게 써서 주다(書贈無量村人)」 화양구곡 중 제 4곡 金沙潭 (금사담)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고 하여 지어졌고 1666 송시열이 바위 위에 암서재 지어놓고 학문을 연마 하고 후진양성을 했다고 한다.암서재 아래 바위에는 ‘명나라 황제가 사는 곳의 구름은 끊어지고, 주자가 살던 무이산은 비었다.’라는 뜻의 ‘蒼梧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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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2393책 (탈초본 118책) 헌종 7년 8월 5일 병술 18/27 기사 1841년 道光(淸/宣宗) 21년 以成近默爲執義, 洪直弼·南性敎爲持平, 李在立·姜獜岳爲正言, 李㘾爲應敎, 李憲瑋爲判尹, 金鍏爲同經筵, 任秀龍爲典籍, 任石老爲掌苑別提, 李在稼爲淸州牧使, 任奭朝爲義城縣令, 趙奎淳爲泰仁縣監, 金履載爲分內醫提調, 兼養賢直長單張德良。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841년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이재항과 함께 이 곳을 찾은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재가는 1824년 광릉참봉을 시작으로 금부도사 군자감봉사,직장,주부를 거쳐서 1831년에는 황간현감을 지냈으며 그 후 1835년에는 영평현감 1837년에는 거창부사를 거쳐서 1841년에 청주목사 1844년에의성현감 1846년에 안주목사를 거쳐1862년에 돈녕부도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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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의 제9곡인 파곶가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이서李舒 이지형李趾亨의 이름과 함께 조병현趙秉鉉,조구하趙龜夏,조봉하趙鳳夏,박사호朴思浩,이택영李宅永,홍원석洪元錫 김희金憙 등의 이름도 각자되어 있습니다. 이서(李舒:1332~1410) 조선 전기에, 사헌부대사헌, 문하시랑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양백(陽伯) 또는 맹양(孟陽), 호는 당옹(戇翁)·송강(松岡). 고려 고종 때 시중(侍中)을 지낸 이연수(李延壽)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연경궁제학(延慶宮提學) 이기종(李起宗)이다. 홍주를 관향으로 한 것은 아버지 때부터이다.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거쳐 군부좌랑(軍簿佐郎)에 올랐으나, 세상이 어지럽고 정치가 문란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