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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923)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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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면 창산리 마을어귀에 남창마을 유래비 옆에 있는 이국헌의 선정비이다. 비석의 크기는 105*65*24센티로서 기단부는 포장도로에 묻혀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목사이후국헌선정애민영세불망비(牧使李侯國憲善政愛民永世不忘碑)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1691년(康熙30)이라는 조성연대가 기록되여있다. 이국헌은 당시 충주목사를 지낸 인물이다. 충주목사를 지낸 이국헌의 선정비는 노은에 1기 신니면에 2기 용두동에 마애비1기 음성향교비석군에 1기가 자리하고있다. 창산리는 본래 충주군 율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단풍리(丹楓里), 창리(倉里), 하산리(霞山里), 목도리(牧渡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창리(倉里)의 창자와 하산(霞山)의 산자를 따서 창산리(倉山里)로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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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산에는 보광사라 불리우는 대웅전에 있는 석불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불상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본래 봉학사(鳳鶴寺) 법당에 있었는데, 조선 헌종 때(재위:1834∼1849) 충청도 관찰사이던 김소(金素)의 자손들이 김소의 묘를 법당 자리에 쓰면서 불상의 머리를 잘라 근처에 파묻었다.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이라는 명당 자리로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스님이 찾아와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 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일러 주었고, 자손들이 그 말대로 하자 집안이 망했다. 금계포란형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인데, 물이 흐르지 못하여 알이 썩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던 것이다. 그 뒤 19세기 중엽 보광산 아래 하도마을에 사는 손(孫)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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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이 좋다하여 아내와 다녀왔습니다. 저수지를 한바퀴 돌수있는 둘레길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은행나무길도 감상하며 저수지도 한바퀴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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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보광산 예전 봉학사지에 있는 봉학사지오층석탑입니다.이 탑은 현재 사담리 보광사(普光寺) 뒷편 옛 절터에 있는데, 1966년 이 석탑의 2층 옥개석 사리공(舍利孔)에서 발견된 청동합(靑銅盒)에 들어있던 청동불상에서 ‘鳳鶴山 鳳鶴寺’라 쓰여진 시주문(施主文)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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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보광산 봉학사지에 산재된 석물들입니다.주춧돌과 석등대석등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새로 후보되어 멋지게 서있는 오층석탑 주위로 폐사지의 쓸쓸함이 뭍어나고 있습니다. 폐사지의 하단부에는 지금도 물이 나오는 우물터가 있습니다. 조선조 말까지 향화가 피었을거러 생각합니다. 그 후 폐사되었다가 일제강점기시절 도괴되었던 것을 1967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워놓은 석탑이 유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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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에 있는 보광사 산신각 뒤에 있는 암벽에 새겨진 각자입니다. 봉학산(鳳鶴山)이라고 새겨져 있고 다른면에는 이 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정윤택(鄭潤澤) 자.순(子 淳)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동시대에 같이 새겨진 각자인 듯 합니다 보광산의 원래 이름은 '봉학산'이었는데 괴산읍지등에 조선 중기부터 '보광산'이라고 불렀다고 잔해지고 있습니다. 정상부에 봉학사 터가 있는데, 고려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봉학사지 오층석탑(충북 유형문화재제29호 )가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