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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218)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내수읍 세교1리에 있는 보호수입니다. 버드나무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 되었으며 지정당시 추정수령은 약 35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 줄기는 베어지고 가지에서 다시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버드나무 아래에는 동네의 쉼터인 정자도 갖추어져 있고 마을회관얖으로는 꽃밭도 조성하고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내수읍 세교1리 마을회관앞에 자리하고 있는 발동기입니다. 조양표 발동기로 근처에 정미소등에서 사용하던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요즈음에는 발동기를 전시하는곳이 많습니다. 가덕면 행정리에도 비슷한 발동기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북이면 대율리에 있는 최명길 신도비이다. 따스한 햇살아래 망초꽃 이불 덥고서 고즈넉히 산새소리에 오수를 즐긴다. 대율리 마을을 지나 이정표따라 길을 재촉하면 만날수 있습니다. 차량도 주차할수 있도록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최명길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 최업(崔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수준(崔秀俊)이고, 아버지는 영흥부사 최기남(崔起南)이다. 어머니는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딸이다. 일찍이 이항복(李恒福) 문하에서 이시백(李時白)·장유(張維) 등과 함께 수학한 바 있다. 1605년(선조 38) 생원시에서 장원하고, 그 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161..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신채호선생의 유물관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찾는날은 입장이 불가했습니다. 유물관과 함께 단재신채호선생의 영정이 있는 사당과 신채호선생이 태어난 생가터에 조성된 무덤이 있습니다. 또한 영당옆으로는 동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의 두번째 여인 - 충북과 나의 연결고리 '충북일보' (inews365.com) 단재 신채호의 두번째 여인 나석주(1892~1926) 의사는 항해도 개령 출신으로 1926년 인천을 통해 서울에 잠입, 그해 12월 28일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죽이는 등 맹확약을 한다. 나 의사는 이때가 서울 초행으로 www.inews365.com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신채호 선생의 묘역입니다. 묘역에는 근간에 세운 석물인 장명등과 망주석 그리고 문인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재신채호선생의 사적비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명등은 비단 분묘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관가 등의 공공 건축물의 처마 끝에 달거나 마당에 기둥을 세워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장치한 등도 장명등이라고 한다. 분묘 앞의 장명등을 일명 석등룡(石燈龍) 혹은 석등(石燈)이라고도 한다. 분묘 앞에 장명등을 세우게 된 시원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분묘제도에 의하면, 분묘 앞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나 문무신상(文武神像) 등의 석조물을 세우는 데는 피장자의 신분 혹은 품계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제한하였고, 장명등의 경우는 일품재상(一品宰相)에 한하여 세..
이 충신각은 조선 고종 2년(1865)에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백면선생으로 의병을 일으켜 반란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된 충신 경주인(慶州人) 낙당(樂堂) 김한정(金漢廷, 1688∼1728)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충신각은 196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는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이밖에 고종 24년(1887)에 김영목(金永穆)이 지은 "충각서(忠閣序)"와 고종 25년(1888)에 송근수(宋近洙)가 지은 "충려기(忠閭記)" 등의 기문판이 걸려 있다. 청원군 북이면 석성리 길가에 위치하고있다. 석성리는 본래 청안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성리, 신하리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