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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3 (32)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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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옥(崔健鈺)은 삼생리 태생으로 젊어서 도일(渡日)하여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인물로 고향인 삼생리에 덕생국민학교에 자신의 사비로 교육기재(敎育機材)를 구입하여 학교에 기증함으로서 학교의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석의 전면에는 최공건옥장학비(崔公健鈺奬學碑)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후면에는 장학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후면에 새겨진 장학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분은 삼생1리 태생으로 재일교포(在日僑胞)로 있으며 본교에 교육기재(敎育機材)를 기증(寄贈)하였기로 그 마음을 기리고자 이 장학비(奬學碑)를 세우나이다. 1982년 11월, 장학비건립추진위원회(奬學碑建立推進委員會)음성대일석재조각" 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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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읍 삼생리 지금은 폐교된 덕생초등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시절 덕생초등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물심양면으로 힘쓴 장동석의 처인 최재순의 기념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고학생장동석처최재순씨기념비(故學生張東奭妻崔在順氏記念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비석의 건립시기는 소화16년(서기 1941년)시월육일로 각자되어 있습니다. 덕생초등학교가 삼생간이학교에서 1941년 4월 1일 조선공립국민학교령에 의하여 음성덕생국민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음성 덕생국민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을 당시 여러가지 학교에 물품기증등 여러가지 협력을 아끼지 않은것으로 보여집니다.옆에 비석인 남경원의 비석과 함께 세워졌습니다. 덕생초등학교는 1935년 7월 16일 삼생간이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27일 삼생개량서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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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읍 삼생리 지금은 폐교된 덕생초등학교앞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시절 남경원의 송덕비입니다.송덕비의 건립시기는 소화16년으로 1941년 입니다. 덕생국민학교가 1935년에 개교된 것으로 보아 그 이후 학교 건립과 더불어 물질적인 또는 행정적인 여러가지로 관여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남공경원송덕비(南公景源頌德碑)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비석의 후면에는 송덕비의 건립시기인 소화16년 시월육일로(昭和16年 拾月六日) 송덕비의 건립시기가 적혀있습니다. 손금입교(損金立校) 아공덕선(我公德善) 일향과공(一鄕顆功) 백세류과(百世流顆)라고 공덕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덕생초등학교는 1935년 7월 16일 삼생간이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27일 삼생개량서당을 보수하여 음성공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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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교되어 적막만이 가득한 대장국민학교 교정을 쓸쓸히 바라보는 이순신장군 동상이다. 문화공보부라는 명칭이 나를 먼 기억속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1978년 8월20일 이정순의 증정으로 이 곳 교정에 자리하게 된 이순신장군상. 많은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제막식을 하였을 텐데....그 시절은 어디로 흐르고 지금은 적막만이 교정을 지키고 있다.반공 승공 더이어 멸공까지 냉전시대의 하나의 산물로 치부하기에는 이순신장군상이 주는 의미는 너무 큰것 같다. 화단에 자리했던 금표비가 학교문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또한 대장국민학교가 새겨진 대문기둥도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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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참 이쁩니다. 모든걸 저를 위해 생각해 줍니다. 가끔씩 소주한잔 하는 저를 위해 아내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두부찜을 해줍니다. 양파와 마늘과 함께 간 맞추워 아내는 저를 위해 요리를 합니다. 조금은 제 입맛과 달라도 저는 아내의 요리가 좋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만듬이라는 것은 참 행복인것 같습니다 아내의 만듬은 저의 행복입니다 지금의 행복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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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알람에 문자가 뜹니다. "택배가 도착했다고...." 택배를 요즈음 내 이름으로 시킨적은 없는데 하고 택배물품을 확인해 보니 서적이랍니다. "아하....그거구나" 언젠가 제가 신변잡기를 끄적거려 놓는 블로그에 출판사에서 블로그에 있는 사진을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출처를 밝히신 후 사용하세요 했더니 사진을 사용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책을 한권 보내주었나 보다. 단양 사인암 사진과 사인암 절벽에 적혀있는 낭원군 글씨를 찍은 사진이 낭원군의 시조와 함께 책에 실려있다. ...... 내가 찍은 사진이 그 누군가에게는 필요의 존재가 되었나 보다. 새벽녁으론 날씨가 차네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푸른바다의 주일아침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