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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2/08 (64)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신니면장 이돈화의 공덕을 기리는 비.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신니면장을 역임한 이돈화(李敦和)의 청렴결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도 3호선 구 도로를 이용하여 신니면사무소를 지나 용원저수지 입구에서 우회전하면 매점이 나오는데, 매점 뒤 배수구 입구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약 200미터 위에 있는 송암공원옆에 자리하고 있다. 비좌직수의 형태로 상단 부분이 넓은 느낌을 주는 화강암 비석이다. 크기는 35 ×17×96.5㎝이며, 본래의 위치인 것으로 판단되나 관리 소홀로 인하여 비문의 일부분이 묻힌 상태이다. 비제는 5×7㎝의 해서체로 ‘면장이돈화청백불망비(面長李敦和淸白不忘碑)’라 음기되었으며, 뒷면의 건립 시기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사지 한가운데 있는 고려 전기 석탑. 현재 원평리 사지에는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과 석탑 등이 남아 있다. 이 사찰은 신라 선덕왕 때 창건되어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적·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또한 이 일대에는 법흥왕 때 선조사(宣朝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나 후대에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조성된 석불과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사찰이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탑은 석불과 거의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독특한 문양과 조각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석탑이다. 한편 원평리 사지 주변에는 충주 숭선사지 등..
공산성 선정비중에 하나입니다.비석의 마모로 인하여 정확한 글자를 알수가 없습니다.겸순찰사****선정비(兼巡察使****善政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공산성 입구에 있는 선정비중에 하나인 충청감영중군을 지낸 임주환의 불망비 입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기유년인 1849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중군임공주환영세불망비(中軍林公柱煥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임주환은 1848년인 헌종14년에 충청감영중군에 제수되었습니다. 승정원일기 2474책 (탈초본 121책) 헌종 14년 6월 25일 정묘 35/40 기사 1848년 道光(淸/宣宗) 28년 ○ 鄭基世, 以兵批言啓曰, 景福宮衛將宋元奎·朱快得, 慶熙宮衛將朴萬晳·安松·高漢柱, 俱以病難供職, 呈狀乞遞, 竝改差, 何如? 傳曰, 允。 李鳳緖爲五衛將, 洪憲範爲忠壯將, 金樂文爲都摠經歷, 金在徽爲訓鍊僉正, 李熙敏爲中樞都事, 僉知三單李觀和·車敬輯·文潤宅·李冕熙·韓弘一爲宣傳官, 鄭頤源爲訓鍊判官, 柳相翼爲武兼, 林柱煥爲..
공산성입구 선정비군중에 하나인 중군을 지낸 조병완의 불망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중군조공병완영세불망비(中軍趙公秉完永世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조병완은 1854년(철종5년)에 충청감영중군에 제수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2555책 (탈초본 123책) 철종 5년 6월 25일 임진 34/41 기사 1854년 咸豊(淸/文宗) 4년 ○ 以李寅臯爲同知, 李寅熙·權顗·金善慶爲宣傳官, 柳衡魯爲忠壯將, 元世顯爲內禁將, 蔡東奎爲三陟營將, 具洛喜爲江原監營中軍, 沈魯元爲咸鏡監營中軍, 李敎昌爲平安兵虞候, 申命浹爲南虞候, 孫興元爲同知, 李寅載爲五衛將, 南履容爲慶尙右兵虞候, 許錕爲慶尙左水虞候, 李尙濂爲訓鍊正, 趙萬赫爲洪州營將, 金沃根爲京畿監營中軍, 趙秉完爲忠淸監營中軍,
공산성 선정비군내에 자리하고 있는 중군최관석의 영세불망비 입니다. 비석에는 중군최공관석영세불망비(中軍崔公寬錫永世不忘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2580책 (탈초본 124책) 철종 7년 6월 20일 을사 16/22 기사 1856년 咸豊(淸/文宗) 6년 〈○〉 又啓曰, 五衛將金膺漢·金惠倬, 文臣兼宣傳官李勉愚·李正翼俱以身病猝重, 無望供職, 新除授井浦萬戶金潚, 母年今爲八十歲, 在法當遞, 呈狀乞遞, 五衛將李東鉉前任晉州營將, 具胄元前任洪州營將, 李承德前任淸州營將, 朴壽良前任黃海營中軍, 忠翊衛將韓弘一前任全州營將, 崔寬錫前任忠淸監營中軍, 忠壯衛將鄭雲岐前任京畿監營中軍, 俱在任所, 上來間該廳番次苟艱云, 竝改差, 何如? 傳曰, 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