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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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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하장리에 위치하고 있는 경주이씨 문간공을 모시는 재실입니다. 근간에 신축하였습니다. 장산재 앞에는 근간에 후손들에 의하여 건립된 이제현과 이사균의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장사재 옆으로는 이제현의 초상화가 있는 영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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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리는 본래 보은군(報恩郡) 탄부면(炭釜面)의 지역으로서 언덕에 자리잡아 덕골 또는 덕동(德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화리(石花里)를 병합하여 덕동리(德洞里)라 하였다. 남원인 양형기(梁亨基)는 탄부국민학교에 임명된 후 12년간 봉직하면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화목하고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며 열심으로 봉직하였다. 1965년 5월 작은 비석을 세워 양형기님의 학교사랑을 기리고저 한다. 탄부초등학교 정문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관리상태는 양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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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면 갈목리 마을회관에 있는 공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박원만공배능성구씨공덕비(朴元萬公配陵城具氏功德碑)라고 각자 되어 있습니다. 갈목리 마을회관을 지을 때 토지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을회관을 지을 수 있는 토지를 희사한 박원만 부부의 공을 잊지 않기 위하여 동네주민들의 아름으로 2020년에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속리산면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갈목리는 동쪽으로 삼가리, 서남쪽으로 장안 면, 북쪽으로 중판・상판리와 인접하고 있다. 법주사와 속리산 쪽으로 향하는 길과 삼가저수지 쪽 길, 말티재로 향하는 삼거리 중심에 있는 갈목리는 산세가 부드럽고 인심 또한 후덕하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갈목과 하갈목을 병합하여 갈목리가 되었고 1947년 속리면이 분할됨에 따라 속리산면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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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처흠은 아버지가 눈병이 있어 약을 써도 오랫동안 효험이 없었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흰 매의 눈알을 구해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선처흠이 산에 올라 치성으로 기도하자 한 쌍의 흰 매가 날아와서 잡아 약으로 썼더니 아버지의 병환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선처흠의 처 영인 경주김씨의 효열문으로 남편이 고질병으로 고생하자 넓적다리 살을 잘라 먹여 낫게 하였다. 선처흠의 임종 시에는 단지주혈로 손가락을 베어서 나온 피를 먹여 며칠을 더 연명케 하였다고 한다. 효자증조산대부동몽교관보성선처흠지문(孝子贈朝散大夫童蒙敎官寶城宣處欽之門) 열녀선처흠처영인경주김씨지문(烈女宣處欽妻令人慶州金氏之門)이란 쓴 정려문과 정려비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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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궁리는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으며, 북으로 아곡리, 동으로 이원리와 보은읍 노티리, 남으로 하궁리, 서로는 신궁리와 접해 있다. 본래 보은군 내북면지역으로 궁뜰 위쪽이 되므로 웃궁뜰 또는 상궁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궁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궁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궁뜰, 양짓말, 음짓말(건너말), 황새말이 있으며, 지명으로는 가장 골, 골바위들, 노태고개, 부새골, 불무골, 삽작재, 선경골, 활미골 등이 있다. 용수삼거리에서 부터 궁저수리 아래까지 논이 형성되어 있다. 23가구 47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궁저수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궁리, 신궁리, 하궁리는 3개의 행정리 이지만, 2010년 둑 높이기 사업으로 많은 주민이 터전을 잃고 고지대로 이전하여 남은 주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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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리는 장안면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서원리, 서는장재리, 남은황곡리에 접하고 있다. 옛날‘귀신다리(鬼神橋)’또는‘지렁이들’ 이라고 불렸던 곳이 바로 구인리이다. 본래 보은군 사각면의 지역으로 서낭나무와 다리가 있어 귀신다리라 하였는데, 보은현원님의 처가가 이 곳에 있어서 원님이 항상 찾아와 ‘귀인다리’ 또는 구인(求仁)이라고 바꿔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함에 따라 대목, 방아다리, 쇄실을 병합하여 구인리라 하고 탄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외속리면, 그리고 현재는 장안면에 속해있다 구인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이면서도 장안농공단지에 13개 업체가 입주해 있어 근로자들이 다수거주하고있다. 구인리는 흔히 ‘방아다리(또는방아실)’라고도 불리는데 방아다리는 도로 옆의 구인리 서북쪽에있는 마을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