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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06 (110)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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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1리 버스승강장 옆에 있다. 앞면에 ‘유학안필상진휼불망비 대정십사년십이월 일립(幼學安弼相賑恤不忘碑 大正十四年十二月日立)’이라 하고, ‘갑자지추 유가무확 애차빈핍 식호구간 주포혜미 비범공맥 수자편석 제성송덕(甲子之秋 有稼無穫 哀此貧乏 埴乎丘墾 舟浦惠米 比范公麥 竪玆片石 齊聲頌德)’이라 치적을 적고 있 다. 크기는 101~109×31~35×13.5cm이다. 자선가 안필상(1891~1932)은 갑자년(1924년)에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어 곡식의 부족으로 힘들어 하는 이웃들에게 소작료를 감면하고 구휼미를 제공하여 빈민등을 구제하였다고 한다.그 공을 잊지 않기 위하여 1925년(대정14년) 동리민들의 이름으로 진휼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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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면 적암리는 본래 보은군 왕내면지역 으로서 붉은바위가 있어 ‘적바위’ 또는 ‘적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적암리’라 하고 마로면에 편입되었다. 적암리는 보은의 동쪽 끝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와 접하고 있고, 서쪽과 남쪽으로 갈평리와 임곡리를 마주보고 있으며, 북쪽으로 구병리와 사이에 구병산(해발 876.0m)를 안고 있다. 상주시 사이에는 시루봉을 두고 있어 갈평저수지와 시루봉, 구병산을 잇는 삼각형 안에 조용히 마을이 들어 앉은 형국이다. 이렇게 물과 산사이 기(氣)를 키워가는 지형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적암리 일대에는 큰장수(인물)가 날 것이라는 전설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혹은 임진왜란때 이여송이 바로 이러한 정기를 끊기위해 새의 목 울대 부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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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암리는보청저수지 아래 병원리 정자말과 마주보고있다.북으로병원리, 동으로 발산리,남으로 성리,서로 동정리와 접해있다.본래보은군 수한면지역으로 1914년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거묵동을 병합하여 교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름 침바우,거먹골,봇들(새터)이있으며,지명으로는가르침바위,각골,마칠목,멱골, 속샴,은골,잿들,지신터골등이있다. 교암리는가르침바우와관련된이야기가 전해오는마을이다. 바위는도로옆에 있었는데,1939년국도건설중에 흔적도없이 사라졌다한다. 마을에는가르침바우와 관련하여 두가지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나는수리티 마을에 사는 수재라는 젊은이에 얽힌 이야기다. 어느날 수재가 거리고개에 사는 스승을 찾아가는 길에 이 병풍바위 밑에 이르렀다. 바위 위에서 이상한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밧줄 하나가 내려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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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면 염티리에서 보은군 거구리쪽으로 길을 재촉하다 보면 만나는 곳이 만마루입니다. 만마루와 염티리를 나누고 있는 고갯길 정상입니다. 아래 사진은 보은군 회남면 만마루가 내려다 보이는 계곡입니다, 계곡길을 내려가며 골짜기안에 있는 동네가 만마루입니다. 만마루는최영장군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지금은 몇호의 집만 남아 밭농사와 대추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길을 재촉하다보면 처음으로 만나는 마을이 거구리입니다. 거쿠리는 남대문 서쪽에 자리한 마을로 옛날 아홉 사람의 부자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쿠리에 있는 용굴은 용이 승천한 굴로 회인현에서 기우제를 올리던 네 곳 중 한 곳이다. 현감이 기우제를 지내면 돌아가기 전에 비가 내렸다고 한다. 남대문리에서 작은고개를 하나 넘으면 만나는 동네가 거구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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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곡1리 용머리는 회인천을 지나 만나는 첫 마을이다. 현재 12집이 살아 가고 있는데, 예전에는 큰 마을이었다. 북쪽으로 성거리마을, 동쪽으로는 양짓말이 있고, 남쪽에는 주막거리마을이 있었는데 대청댐 담수로 사라져 버렸다. 서쪽으로 샘골마을과 중뜸마을이 형성되어 지금의 용머리 마을이 되었다. 1980년대에 대청댐이 건설되어 새들이라는 좋은 농토가 전부 수몰되었다. 한때 는 40여 호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이었는데 정겹게 살던 주민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 조금은 쓸쓸한 마을이 되었다. 마을 중앙에는 한문과 함께 예절을 가르키는 회인서당이 있는데, 예전 회룡초교를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다. 회룡초등학교는 1963년 회인국민학교 용곡분교장 인가, 1967년 회룡국민학교 인가를 시작으로 1982년 회인국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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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교2리 날망은 대청호의 담수로 신곡1구, 거교2구 주민과 타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멀리서 보면 산 정상에 자리한 성처럼 보이는데, 사당마루 안골 남쪽 산을 깎고 가운데를 파 도로를 뚫어 마을이 날망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마을이 언덕 위에 있다 보니, 회인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수몰된 집도, 논도, 들도 이제는 아름다운 풍경에 지워져 버렸다. 집들은 계획된 마을답게 일정한 간격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식당 몇 집과 슈퍼 등이 있을 뿐, 면 소재지라 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다만, 대전행 버스는 분주히 오가고 있다. 마을은 도로에서 가파른 경사를 30여m 올라야 한다.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학교, 면사무소가 있다. 마을과 면사무소의 이동을 수월하게 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