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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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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교동리 비석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때 도평의원을 지낸 오윤묵의 송덕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도평의원오윤묵송덕비(道評議員吳允黙頌德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오윤묵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으나 지역 유력자로 일제의 통치에 부응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윤묵의 행적과 관련해서 지역에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고 옥천군 내 각종 공사 현장 등에 지원을 한 기록이 보인다. 1911년 7월 수해로 구읍 실개천 제방이 무너지자 318원 을 내서 제방 공사를 하도록 했고, 옥천읍내 교량 개설비로 51원을 부담했다. 이와 함께 1917년 8월 대홍수가 나서 옥천 일원을 휩쓸었는데, 이해 10월 20일 옥천교 개통식에 ‘읍내 부자 오윤묵 씨의 집안 삼부자’가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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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도농1리 농막마을에 있는 하동인 정병익의 시혜적선비입니다. 농막마을은 하동정씨들의 집성촌입니다. 마을초입에 세워져 있으며 원래의 비석은 1939년 일제강점기 시절 세워졌으나 그 후 공사차량의 추돌로 비석의 훼손되어 그 해 후손들에 의하여 2005년에 개립되었습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사인정공병익시헤적선비(士人鄭公秉益施惠積善碑)라고 적혀 있으며 후면에는 그의 행적을 기술하여 놓았습니다. 비석은 마을 초입에 서있습니다. 비석의 명칭으로 추측하면 정병익이 가뭄이나 홍수등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받는 동네주민들을 위해 은혜를 베풀음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은혜를 입은자들이 건립한 비석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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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구음리 구음리 입구 비석거리에 있는 파주인 염병주의 자선비입니다. 파주염공휘병주자선지비(波州廉公諱秉珠慈善之碑)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자손들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구음리는 파주염씨들의 집성촌입니다. 비석거리에 있는 비석들의 대부분이 파주염씨들과 관련된 비석입니다. 염병주는 매사에 공명정대하며 성품이 온순하고 한해(閑害)를 입었을때는 곳간을 털어 빈민을 도왔으니 그 은헤가 살아있는 부처같았다 그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빗돌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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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이던 석물일까? 청성면 도장리 마장마을입구에 있는 문수암에 가면 보이는 석물입니다. 문수암과 관련된 여러 비석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수암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창건 된것으로 보아 그 당시 조성된 석물로 보입니다. 마장리에는 옛날 관리들의 여행자 숙소인 은천원이 있었고, 그곳에 말을 매어 놓는 곳이 있어 말바탱이라 불려서 마장馬場이라 했다. 옛날부터 풍수해와 가뭄이 없고 들이 넓고 풍요로와 청산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청산의 제일은 마장이다’라고 구전 된다. 주요 성씨는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배출한 옥천육씨이며, 마을 뒷산에 목사공 선대 묘소와 재실이 있다. 한우 사육 농가가 많으며 벼농사와 사과, 인삼 등을 재배한다. 문화유적으로 조계종 문수암과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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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합금리 하금마을 입구에 있는 전주인 리학용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전주리학용공적비 라고 적혀있습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1976년 12월이며 부락민일동의 이름으로 세웠습니다. 동네를 위하여 토지희사나 또는 부락일에 금전적인 보탬을 준것을 잊지않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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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금리 이장으로 재직하면서 동네주민들의 편익과 주거및 열악한 교통상황 향상을 위하여 열심을 낸 이장 박동선의 공적을 잊지않기 위하여 동네주민들의 이름으로 1985년에 세운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이장밀양박공동선공적비(里長密陽朴公東善功績碑)라고 새겨 있으며 후면에는 박동선의 공적내용을 기술하였습니다.지수리와 합금리 고당리간의 도로개통으로 인하여 불편했던 도로상황을 해결하여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풀어주었다.하금리 마을입구에 서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