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효자각
-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 화양구곡
- 선돌
- 각연사
- 문경새재
- 단지주혈
- 사인암
- 상당산성
- 보성오씨
- 외사리 당간지주
- 국립청주박물관
- 곡산연씨
- 청주박물관
- 부도
- 화양동 암각자
- 충주박물관
- 청풍문화재단지
- 경주김씨
- 현충시설
- 청풍문화재단지 비석
- 공주박물관
- 법주사
- 효자문
- 사과과수원
- 공산성 선정비
- 밀양박씨
- 문의문화재단지
- 부여박물관
- 충북의 문화재
- Today
- Total
목록2021/10 (107)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걸의 묘비. 권걸(權傑)의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26㎝로 비신은 높이 81㎝, 너비 38㎝의 크기이다. 상부에는 16엽의 연화문을 돌려 조각하였고, 꼭대기에는 보주(寶株)를 올린 흔적이 있다. 훼손이 심하여 글자를 알아보기 힘드나, 상단을 보면 횡서로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되어 있다. 그 아래 종서로 ‘정부인의령남씨지묘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길창군권걸사일지묘(貞夫人宜寧南氏之墓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吉昌君權傑士逸之墓)’..
취봉당탑(就峯堂塔)옹정8년 경술5월제자아(雍正8年 庚戌5月弟子芽) 옹정8년이면 1730년으로 경술년이며 영조6년이다. 같이 있는 자우당탑이 서기 1718년이므로 취봉당탑과는 약 12년의 간격이 있다. 부도의 전체높이는 약 192센티이며 촤대폭은 85.4센티이다. 보살사 가기전 왼쪽 산허리에 조성되여 있는 민묘군밑에 자리하고 있다. 부도의 상단부분은 피여나려는 연꽃봉오리를 형상화 하였으며 연주문을 두르고 그 밑으로는 복련의 화문을 조각하였다. 옹정8년 경술5월제자아(雍正8年 庚戌5月弟子芽)라고 적혀있다. 이 부도의 조성시기인 듯 한데 옹정8년 이면 영조6년으로 서기 1730년이다. 이 부도의 특이한점은 조성시기를 새긴곳의 아랫부분에 있는 사각형의 홈이다. 이 사각형의 홈의 용도가 무얼까 많이 궁금하다. 사..
권근 삼대 묘역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수성구 시흥동에 있던 권근의 묘소를 1444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로 천장하면서부터, 1505년까지 4대 7위의 묘소(부인 합장 포함 13위)를 정한 곳이다. 후에 현손 권헌(權憲)과 권유(權愈)의 묘를 천장하여 모두 9위, 합장과 쌍분을 포함한 17위의 묘소도 같은 장소에 있게 되었다.
안내면 도농리에 있는 배천조씨의 재실인 영모재 입니다. 조헌의 사당인 표충사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모재永慕齋는 중봉 조헌(1544∼1592) 묘소 아래에 있는 표충사 우측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중봉 조헌의 제사를 위한 건물이다.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75호(2010. 6. 11.)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이며, 팔작지붕 형태의 목조기와 건물이다. 특히 천장은 산속에 입지한 관계로 추운 지역에서 나타나는 고미반자형(일종의 이중지붕)으로 구성 되어 있다. 우측에 자리한 부엌에서는 제사에 쓰일 음식을 장만하였고, 그 옆에 있는 2칸의 방은 제사를 준비하는 문중 사람들과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서 대·소사를 의논하던 곳이다. 왼쪽 1칸의 방은 제사에 쓰일 제기를 보..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 176㎝로, 비신의 높이 116㎝, 너비 61.5㎝, 두께 24㎝이다. 상부에는 12엽의 연화문을 조각하였고,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의 흔적이 있다. 묘비는 위쪽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 횡서하고, 아래에 종서로 ‘홍치을축오월졸십월장 통훈대부결성현감권료묘 정덕정묘이월입석(弘治乙丑五月卒十月葬 通訓大夫結城縣監權..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해준의 효자각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된섬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민해준의 효행은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하고 있다 민해준이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다. 이때 비를 피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함께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가 바위가 무너지려 하자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내곤 자신은 바위에 깔려 죽음을 당하였다. 이 같은 민해준의 효행을 기려 훗날 유림과 동리에서 효자각을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효자민해준지려(孝子閔海俊之閭)’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현재 민해준의 후손들은 알 수가 없다. 민해준이 소유하였던 토지 일부만이 남아 있는데, 이를 마을에서 공동 관리하면서 수익금으로 매년 마을 사람들이 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