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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1/12 (59)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김양호 부부의 정효각은 조선 고종26년(1889)청주목 남차이면 안대리 지금의 남이면 구암리 안대마을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양암당(養巖堂) 김양호(1776-1879)와 그 부인인 진주강씨 부부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각 입니다. 지금의 정효각은 1935년에 증건하고 1989년애 보수한 건물로 겹처마 팔작지붕에 목조기와집이며 사면을 낮은 막돌로 담을 만들어 둘렀으며 홍살로 막고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김양호와 그의 부인인 진주강씨를 기리는 쌍정지비가 정효각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주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주위는 정려각은 철재 울타리로 쌍정지비는 석재울타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김양호는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성택(聖澤), 호는 양암당(養岩堂)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
곽원호는 조선시대의 효자입니다. 본관은 현풍(玄風)이고, 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이며,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진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곽원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대에 걸쳐 효행으로 정려(旌閭)된 효자 집안이다. 여덟 살 때에 묘소 아래 수리(數里)에 걸쳐 소나무와 참나무를 심으니 후에 숲을 이루고 울창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효심에서 한 일이었다. 부모를 지성으로 섬겨 하찮은 음식과 물건이라도 먼저 드렸다. 또한 부모가 병환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자신의 피를 부모님에게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돌아가신 뒤로는 묘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50년 동안 묘소를 지켰으며 90여 세에 여막에서 죽었다. 1852년(철종 3) 조정에 장계가 올라가 1854년에 정려(..
곽원호는 조선시대의 효자입니다. 본관은 현풍(玄風)이고, 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이며,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진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곽원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대에 걸쳐 효행으로 정려(旌閭)된 효자 집안이다. 여덟 살 때에 묘소 아래 수리(數里)에 걸쳐 소나무와 참나무를 심으니 후에 숲을 이루고 울창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효심에서 한 일이었다. 부모를 지성으로 섬겨 하찮은 음식과 물건이라도 먼저 드렸다. 또한 부모가 병환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자신의 피를 부모님에게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돌아가신 뒤로는 묘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50년 동안 묘소를 지켰으며 90여 세에 여막에서 죽었다. 1852년(철종 3) 조정에 장계가 올라가 1854년에 정려(..
아버지인 곽여찬의 묘소 아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물은 망주석 2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곽진은(郭鎭殷)은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여찬(郭汝贊)의 아들로 아버지의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자른 피(단지주혈)로 어머니를 구한 일이 있다. 아버지 병환을 고치려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약값을 마련하지못해 도리가 없어 관가에 나가 공천(公賤)에 몸을 팔려고 하였더니, 관가에서 그 효는 가상하나 종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하고 약물(藥物)을 내리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그 효심에 감동하여 800금을 희사하므로 인삼을 다려드리니 부친의 병이 나았다. 곽진은의 묘소, 상석 앞면에 효자증참판곽진은묘 효부배정부인이씨..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자리하고 있는 현풍인 곽진은과 그의 부인 인천이씨의 정려문입니다. 곽진은(郭鎭殷)은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여찬(郭汝贊)의 아들로 아버지의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자른 피(단지주혈)로 어머니를 구한 일이 있다. 아버지 병환을 고치려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약값을 마련하지못해 도리가 없어 관가에 나가 공천(公賤)에 몸을 팔려고 하였더니, 관가에서 그 효는 가상하나 종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하고 약물(藥物)을 내리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그 효심에 감동하여 800금을 희사하므로 인삼을 다려드리니 부친의 병이 나았다. 1822년에 조정에 장계가 올라가 1828년(순조 28)에 정려(..
곽여찬의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순조(純祖) 때의 사람으로 네 살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偏母)를 지성으로 봉양하며 늙도록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 상 때에는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성묘하였다. 어려서 아버지 상을 입지 못하였던 일을 한탄하더니 그의 회갑에 이르자 한이 맺혀 상복을 갖추어 상례(喪禮)를 삼년간 다하니 정성이 대단하여 향리에 널리 떨치었다.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817년에 정려(旌閭)되었다. 정려문은 현재 상당구 탑동 251번지[탑동로 35]에 남아 있다. 정려문에서 5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현퉁곽씨 삼대묘소중 맨위에 자리하고 있는 곽여찬의 묘소입니다. 곽여찬의 묘소, 상석 앞면에는 효자가선현풍곽공휘여찬지묘배정부인나주정씨부좌(孝子嘉善玄風郭公諱汝贊之墓配貞夫人羅州丁氏祔..